작은 숨구멍으로 이해하는 소중한 세상
[ 독자투고 ]
작성 : 2020년 03월 25일(수) 13:01 가+가-
이제 어머님이 계시지 않아 부끄럽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군복무 중에 어머니가 법적으로 이혼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머니는 그날 20여 년이 지난 별거의 생활에 이까짓 서류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도 펑펑 우셨다. 나는 그런 어머님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마음에 담고 이혼무효소송을 제기하려 중대장께 부탁드려 특별휴가를 3일간 받아 온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여러 여성단체들과 무료법률상담기관을 다 다녀 봤지만, 실제로 이를 진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었고 그 비용은 그 당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던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었다.

아직도 그 신설동 5거리를 기억한다. 어스름하게 어둠이 깔려 있던 그 3일 휴가의 마지막 날, 이런 악한 짓(?)을 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나 자신의 무능에 대한 절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며 집으로 걸음을 걷다 문득 법무사라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고 그 법무사사무실을 찾아 들어갔었다. 따뜻하게 나를 받아 차를 한잔 대접해 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신 그 법무사님은 당시 참 어렸던 나에게는 꽤나 의미 있는 말 한마디를 해 주셨다. "이혼은 그것이 어떤 이유라고 하더라도 결국 부부 양쪽이 50대 50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 나에게 아버지는 태어난 이후 나를 버린 나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20대가 되도록 키워주신 너무 좋은 분이셨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통해 내 아버지가 나쁘지만 그게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써도 될 만큼의 어떠함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옛날 '나'를 버린 아버지의 선택에 살짝 이해의 첫 발자국을 내 디딜 수 있는 시작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끌어 광야로 나온 모세에게(신17:11) 이제 막 모세의 뒤를 잇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수1:7)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치 말 것을 명령으로 말씀하신다. 8살 때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요시야에게도 성경은 그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왕하22:2)고 기록하고 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누가 나쁘고 좋은지에 대한 판단에 대해 좀 더 넓은 이해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거기에는 배고픈 자도 눈먼 자도 내게로 나아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행위 저 너머에 있는 진짜 마음을 소중히 여기셨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다가가신 예수님도, 자신을 떠나 거지가 되어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도 보여진 모습과 행위 저 너머에 있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필자가 전공하고 가르치는 '상담'의 영역에서 전문적인 상담자에게 요청되는 매우 중요한 기술은 사람에 대한 편견과 이를 통한 판단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 안에 감추어진 그 사람만의 소중한 삶의 이야기가 상담자가 들어야 할, 그리고 내담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상담은 바로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의 삶에 공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조그마한 숨구멍으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쪽이 잘 못 했으면 얼마나 했고 우리가 옳으면 얼마나 옳을 것인가? 수많은 가짜뉴스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잘 감당해 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대방을 향한 편견, 판단중지를 가지는 것이다. 마음에는 있더라도 내 이해의 폭을 조금만 넓혀서 그에게 내재하는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떠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시37:7)고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싫어한다. 그분은 내 아버지였지만 내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아버지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었고 그리고 나는 그냥 단순히 그 삶을 인정해 드릴 수 있을 뿐이었다. 교회도 그냥 그렇게 나와 다른 그들의 주장과 생각과 분노와 아픔을, 나아가 그들의 삶을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작은 공간, 서로가 숨 쉴 수 있는 조그마한 숨구멍을 좀 만들어 보면 어떨까. 굳이 사랑하지는 않을지라도 말이다.



조영진 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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