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는 동화책이 없다
[ 현장칼럼 ]
작성 : 2020년 03월 24일(화) 00:00 가+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캄보디아에서 새로 출판된 책은 연간 평균 700여 권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는 연 평균 4만 3000권 정도의 신간이 나오니 육십분의 일 수준이다. 국립도서관에 가보니 캄보디아어로 된 도서는 (주로 불어로 된) 외국 도서의 사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나마 상당수는 원색의 거친 삽화로 표지를 장식한 통속소설들이었다. 아동들을 위한 동화책은 거의 없고 중·고교 교과서도 5종에 불과하다.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예체능 수업이 없으니 교재도 물론 없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캄보디아에는 아이들이 읽을 책이 없다.

읽을 책이 없으니 없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책 읽는 방법이다.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다. 어렸을 적 거짓말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게 된 아이가 성장하면서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운이 좋았는지 거짓말이 탁월했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거짓말로 성공하고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이었을까? '거짓말 잘하는 이 아이처럼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되자'였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교사는 그 황당한 '정답'을 주입하고, 아이들은 주입된 그 정답을 그저 받아들인다. 읽기가 아니라 외우기다.

책이 부족한 탓이든, 지나친 주입식 교육의 탓이든, '읽기'가 충실하지 못하면 '생각하기'가 빈곤해질 것이다. 생각의 빈곤은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사람을 만들 것이고 그런 사람은 결국 사회의 질서나 압력에 취약해지기 쉽다. 게다가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사회적 압력이란 한 편으로는 오래된 1인 독재 감시사회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킬링필드라는 기억이다. 수많은 지식인이 죽고 책들이 불살라졌다. 살아남은 자들은 베트남의 군사통치 10년에 이어 국가폭력이 일상화된 사회를 살아간다. 얼마나 무겁고 또 무거울까? 좀체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슬프고 아프게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포스트 킬링필드'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학살의 상처를 치유하고, 감추어진 자신들의 아픔을 드러내고자 하는 평화 운동이 잔잔히 이어지고 있다. 입을 닫고 눈을 감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아니면 다 잊었다는 듯이 살아오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의 불안한 내면을 세상에 노출시키고 외세에 의해서 자행된 그러나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킬링필드의 시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를 위해 싸웠던 자국민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새롭게 발굴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부정에서 긍정으로의 이동이라고 이름 붙였다. 역사를 스스로 다시 읽기(Self-Reading) 시작할뿐더러 이제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읽기(Reading-Self) 시작한 것이다. 참혹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라는 틀을 깨고 평화의 기여자로서 자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침묵이 외침으로 변하고 있는 지금, 연대와 응원이 필요하다.

불교권 사회주의 국가인 동남아시아 4개국,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봉사선교를 하고 있는 한아봉사회는 읽을 책이 부족해서 책을 읽는 방법도 부족한 캄보디아 아이들을 위해 동화책을 번역 출판하고 있는 망고나무출판사와 함께 일하고 있다. 망고나무출판사는 양질의 외국 동화책을 캄보디아어로 번역, 출판해서 공단 탁아방과 유치원, 도시 빈곤지역, 농촌지역 초등학교 등에 배포하고 현지 독서지도사를 양성하기 위해 수고하고 있다. 캄보디아 아이들이 주입한 그대로 외우지 않고 스스로 읽기를 기대하면서, 스스로 읽기를 배운 아이들이 또한 자신과 사회를 적극적으로 읽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침묵과 자기 부인의 시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의 당당한 주체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아이들 손에 쥐어지는 그 한 권의 동화책을 전심으로 응원한다.

서재선 목사/한아봉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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