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과 자베르, 우리 내면의 두 모습
[ 생감교육이야기 ]
작성 : 2020년 03월 17일(화) 09:12 가+가-
영화로 보는 생생하고 감동있는 교육 이야기 <11> '레미제라블' 통한 영성교육의 재발견
<b># 죄수 24601'에서 '마들렌'으로</b>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갤리선(galley ship) 앞 대척점에 선 두 인물의 등장과 함께 비장한 합창으로 시작된다. 죽어가는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노예 생활을 한 장발장. 그리고 그가 석방되는 순간까지 "죄수번호 24601"를 외치며 '위험인물 증서'를 교부하는 자베르가 이 영화를 끌어간다. 20년 만에 자유인이 되었지만 잠잘 곳조차 구할 수 없는 장발장을 받아준 이는 미리엘 신부였다. 그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게 잡혀 끌려온 장발장에게 신부는 "친구여. 왜 그리 빨리 떠났소? 이것도 주었는데 두고갔네 그려" 하며 은촛대를 자루에 넣어준다. "이것을 가져가서 부디 정직한 사람으로 사시오. 주님은 보혈의 능력으로 당신을 어둠에서 건져내셨소!"

지금까지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며 증오가 가득했던 장발장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끓고 눈물로 통회한다. "난 세상을 증오했습니다. 늘 세상이 나를 증오했으니까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날 믿어주고 형제라고 불렀어요. 내게도 영혼이 있고 내 영혼은 하나님 것이라고 했어요. 어떤 힘이 이렇게 내 마음을 흔드는 걸까요? 죄악이 소용돌이치는 어둠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내게 장발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범죄자로 낙인찍은 '위험인물 증서'를 찢어 공중에 흩뿌릴 때 마지막 조각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후 장발장은 '마들렌'이란 이름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사회봉사와 구제에 앞장선다. 신부로부터 받은 사랑과 용서를 고통당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자베르는 "사람은 바뀌지 않아. 한번 도둑은 영원한 도둑일 뿐"이라며 호시탐탐 그를 다시 잡아 가두려 한다. 사회질서를 위해 법과 정의에 입각한 강력한 통치가 필요하다는 신념이 자베르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발장은 미리엘 신부의 무조건적 사랑, 환대, 용서 속에서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였다. 이것이 그를 '죄수 24601'에서 '마들렌'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b># 모든 사람의 회심을 가능케 하는 참된 복음</b>

'레미제라블'이 오늘의 영성교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인가? 코메니우스의 선언처럼 참된 복음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모든 방법을 통한 회심, 변화,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한다. 자베르의 눈에 비친 장발장은 영원한 '24601', 즉 반사회적 본능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예비 범죄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미리엘의 눈으로 본 장발장은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agnes Dei)이었다. 미리엘(Miriel)은 '하나님의 거울(mirror of God)'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미리엘은 하나님의 눈에 비친 장발장을 바라보고 그에게 새로운 기회, 새로운 시작을 부여해준 것이다.

'변형화 기독교교육'을 주창한 제임스 로더는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사도 바울의 선언에 주목한다. 자기 죄를 깨닫고 통회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리엘이 장발장을 사랑과 용서로 품은 것처럼, 장발장도 자베르를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로 감싼다. 자베르를 처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앞에서 장발장이 보여준 사랑과 용서는 자베르의 존재를 흔들어 놓는다. 너무나 확고했던 신념의 붕괴 앞에서 자베르의 내면은 무너져버리고 만다. 똑같은 사랑과 용서 앞에서 장발장과 자베르의 운명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무력성과 무조건적 사랑을 대하는 내면으로 귀결된다. 자기 무력성과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자베르는 죽음을 택한다. 규율과 율법에 기반한 삶은 참된 사랑과 불가항력적 은총 앞에서 그 파괴력과 공격성을 잃고 만다. 사회적 율법의 관점에서 볼 때 장발장은 범법자, 예비 범죄자, 미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격과 영성은 자베르의 '사회법 준수' 단계를 훌쩍 넘어 사랑과 용서에 기반한 '보편적 원리' 단계에 이미 도달한 것이다.

예수님은 70인 전도대의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눅 10:21).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당시 시대정신에만 충실했던 자베르는 자기신념 체계에 갇혀 '자멸의 길'을 가지만,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능력을 따라 변화된 장발장은 자신과 주위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길'을 간다. 사실, 장발장과 자베르는 19세기 격동기 프랑스의 두 모습인 동시에 우리 내면의 두 모습이다. 이러한 긴장을 바라보며 이 시대 영성교사는 그리스도, 미리엘, 장발장, 그리고 마들렌이 걸어간 '좁은 길'(via crucis)을 성실히 그리고 책임 있게 걷도록 요청받고 있다.

이규민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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