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부 이야기
[ 목양칼럼 ]
작성 : 2020년 02월 28일(금) 00:00 가+가-
2004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던 한 학생이 주일 아침 이른 시간에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 한 부부를 그 주일예배에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본인은 다른 교회 전도사로 사역 중이라 함께 갈 수 없지만 자신의 이모 내외를 소개하니, 신앙으로 잘 인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부부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상태였고, 부인은 자궁암 말기 환자로 위중한 상태였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후부터 남편인 최 성도는 차츰 진지했으나 그 아내는 별다른 신앙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아내는 예배 도중 자주 밖으로 나가곤 했는데, 눈치 빠른 한 권사님이 재빨리 쫓아가 화장실에서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난감해있는 것을 발견하고 옷에 묻은 용변을 처리해주는 일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최 성도는 "아무래도 아내가 더 이상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면서 내게 호스피스 케어 병원 소개를 부탁했다. 최 성도의 아내는 며칠 뒤 병상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증세는 급격하게 심각해져서 사랑하는 남편의 헌신적인 간호에도 불구하고 임종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마지막이 가까워 왔을 때, 우리 교인들은 의료진들과 함께 병상세례를 주기로 하고 임종예배를 함께 드리게 되었는데 그녀는 이미 말을 하지 못했고, 신앙고백도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예배 후 기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찬송을 부를 때 그녀의 발 끝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찬송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발가락이 춤을 추듯이 들석이며 박자를 맞추고 있는게 아닌가! 그녀는 못내 안타까워하는 남편과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신앙고백을 온 힘을 다해 알리고 있었다. 가족도, 교인들도, 의료진들도 이 놀라운 발짓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특히 남편인 최 성도는 아내가 주님을 영접했다는 사실에 크게 감격하고 기뻐했다.

아내를 그렇게 떠나 보낸 후 15년 동안, 최 성도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주일예배와 수요예배에 참석했는데, 부천에서 서울 방배동까지 무려 두시간 이상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교회로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최 집사님마저 암에 걸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비가 몹시 오던 날 나와의 인사를 끝으로 아내 곁으로 갔다.

교회를 개척한지 20년이 흘렀다. 가끔 예배시간에 익숙했던 얼굴들, 지금은 볼 수 없는 옛 성도들, 천국으로 이사를 떠난 이들의 웃는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들은 이제 꽤 많아져 예심의 또 다른 가족으로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다.

김예식 목사/예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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