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 기독교인 지도자의 부재
[ 땅끝편지 ]
작성 : 2020년 02월 18일(화) 00:00 가+가-
일본 편 7

기독학생회 모임 후 함께 한 필자.

3.11쓰나미 피해지 오오후나토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낙농학원대학 학생들과 필자.
새로운 선교지가 된 낙농학원대학은 일본기독교인 구로사와도리죠에 의해 1933년 낙농의숙으로 출발, 1960년 대학으로 발전했다. '근대 덴마크정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룬트비 목사의 영향을 받은 설립자는 낙농학원의 건학정신을 기독교 정신에 기초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흙 사랑'의 삼애정신(三愛精神)과 건토건민(健土健民)으로 정했다. 그리고 성서를 바탕으로 한 인간교육과 더불어 '농(農)·식(食)·환경·생명'을 중심으로 약 3500명의 학생을 교육하고 있다. 설립 초기에는 전국에서 불러들인 절대 다수의 기독교인 교직원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신학교가 아닌 일반 사립대학에서 많은 목회자가 배출될 정도로 기독교교육의 영향이 지대했다. 이곳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설립 초기의 기독교정신과 기독교주의대학으로서의 모습이 퇴색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종교주임이 함께 일할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7% 정도의 기독교인 교직원으로 어떻게 기독교주의학교로서 건학정신을 이어가며, 기독교교육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답답하기만 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의 중심에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는데 지금 일본은 기독교인 지도자가 부재 중이다.

필자가 담당한 일은 강의와 예배가 중심이었지만 청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했다. 연구실은 동아리방처럼 학생들의 왕래가 잦았다. 그들 중에서 커플도 탄생하여 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여름방학 때에는 아시아학원의 워크캠프, 봄방학 때에는 평화를 테마로 한 한국연수여행을 진행했다. 현재, 기독교학은 1학년 필수과정이고, 매주 대학예배가 있다. 예배는 1학년(약 800명)을 중심으로 자율 참석인데, 학기 초 500명 이상 참석하며 학기 말로 갈수록 줄어들지만,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석한다. 학생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인데, 전하는 자와 듣는 자를 위해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2011년 3월 11일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사고이다. 당시, 낙농학원대학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으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필자는 다른 교수들에 비해 움직임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5월초 학생 2명과 함께 일본기독교단 오오후나토교회를 거점으로 진행될 봉사활동 준비를 위해 선발대로 파견됐다. 이후에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낙농학원을 떠나기 전까지 2년에 걸쳐 학생들을 인솔하여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동일본 대지진과 방사능 유출사고는 일본사회 뿐 아니라 전세계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한편 이러한 고난은 하나님을 찾게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여 피해지를 중심으로 일본교회의 성장세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의 깨달음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피해를 입은지 9년이나 됐지만, 복귀와 회복은 구호에 그치고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일본교회들은 작은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 피해자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으려 하고 있다. 지금도 여름이면 피해지의 가정을 홋카이도로 초청하여 휴양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박미애 목사/총회 파송 일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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