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함께 할일이 남았는데?
[ 목양칼럼 ]
작성 : 2020년 02월 21일(금) 00:00 가+가-
2000년, 교회를 개척하고 첫 여름수련회를 강원도 정선에서 가졌다. 새로운 얼굴들을 서로 알아가는데 '전교인수련회' 만큼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서먹하게 모였지만 용기 내서 찾아온 첫 번 수련회는 그 자체로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소중한 추억을 준다. 그래서 사람이든 교회든 첫사랑은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나 보다.

강원도 산수박과 뜨거운 감자를 손을 호호불며 나눠 먹고, 찰옥수수를 뜯으며 큰 소리로 웃는 사이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에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며 함께 찬양하고 기도했던 시간들은 개척교회의 뿌리를 정착하게 하는 공동의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첫 수련회를 마치고 난 후, 한 여성 참가자가 다음 주일 교회에 등록하고 한 가족이 되었다. 그날 이후 그 여성은 5년여 동안 한결같이 교회의 구석구석을 종횡무진 돌보고 보살피며 때로는 시어머니처럼 때로는 자애로운 언니처럼 누나처럼 교인들을 살뜰히 챙겼다. 그 때문에 집사님으로, 초대 권사님으로 고속 승진(?)을 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담임목사의 최측근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후 목양실 문을 노크하며 들어온 권사님은 새롭게 시작하려는 가을바자회로 여전도회원들 간의 이견들을 전하며, 이를 잘 조화할 지혜를 구했다. 항상 교인들 사이에서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담임목사인 내게 이 일에 대한 비전과 목회적 방향을 먼저 묻고 그 방향으로 성도들을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권사님으로 인해 우리 교회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2006년 주일 저녁, 몇몇 성도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에서 권사님은 교회 안에 혼자 되어 돌봄이 필요한 남자 성도들이 함께 공동거주할 수 있도록 아파트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아직은 교회 재정이 미치지 못하니 몇몇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금하여 공동 주거 공간을 마련해 외로운 이들을 돌보자는 제안이었다.

때로는 목사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권사님 때문에 한껏 신이 난 나는 다음날 터키로 여름성지 순례를 권사님은 막내딸을 보러 미국으로 잠시 휴가를 떠났다. 그런데 그날이 우리의 작별이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성지순례 이틀째 되던 날 밤, 나는 권사님이 비행기 안에서 돌연 심장마비를 일으켜 공황에서 내리자마자 인근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튿날 새벽, 터키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달려가 만난 권사님은 이미 영안실로 옮겨진 뒤였고, 분골함을 들고 교회로 돌아온 후 참 많이도 울었다.

개척 초기에 함께 주의 길을 비전으로 확인하고 순종하며 꿈같은 시간들을 함께 하던 임 권사님은 내 첫 목회에 가장 소중한 동역자였으나, 무슨 이유인지 하나님은 권사님을 그렇게 속절없이 데려가 버리셨다.

이젠 교인들 대부분이 알지도 못하는 권사님의 부재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아쉽고 그립다. 나는 오늘도 사람을 찾으시던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렘 5:1)을 떠올리며 조용히 말한다.

"권사님, 권사님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김예식 목사/예심교회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