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 흔적을찾아서 ]
작성 : 2020년 02월 13일(목) 14:23 가+가-
13. 오르겔바우마이스터 홍성훈

파이프오르간 제작 현장에서 10년만에 재회한 홍성훈(우측)과 필자.

성공회대성당에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홍성훈 장인의 첫 작품 파이프오르간.
신년 특집기사로 인해 지난달 '흔적을 찾아서'를 게재할 수 없게된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예수의 흔적(STIGMA)을 찾아 떠나는 특별기획 '흔적을 찾아서'를 위한 지속적인 기도와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편집자 주>



#섭리(攝理)

2020년 2월 4일, 그날이 입춘(立春)이라 했다. 봄이 오시는 날, 사람들은 입춘방(立春榜)을 문지방이나 대문에 써 붙여 행운과 풍년을 기원하며 봄을 기렸던 그날-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그날따라 아침기온 마이너스 12도를 기록, 올 들어 가장 춥고 낮 동안에도 영하의 날씨 속에 한때 함박눈까지 내렸다. 어디선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알을 품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건만, 지구촌은 온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회마다 마스크를 쓴 채 예배 드리고, 성가대 찬양도 생략, 눈인사로 성도의 교제를 대신하는 등 온 나라가 방역에 초긴장, 만남을 자제하고 외출을 삼가는 분위기였다. 허나, 한국 최초 오르겔바우마이스터(Orgelbaumeister) 홍성훈 장인(匠人)으로부터 어렵사리 얻어낸 취재 약속이었던지라, 필자는 '겁도 없이' 그의 작업현장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오랜만입니다. 만남조차 꺼리는 요즘 어수선한 현장까지 찾아 주셔서 고맙고 영광입니다.

-현장을 보고 싶어 눈치도 없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마스크도 없이 작업에 몰입하시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건 2010년 봄, 소백산 자락 풍기읍 성내교회(최갑도 목사 시무). 그는 한국 최초 오르겔바우마이스터로 파이프 오르간에 관해서, 필자는 한국교회 최초 순교자 토마스 목사에 대해서 특강을 하며 수인사를 나눴던 것. 꼭 10년만의 해후(邂逅)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아니던가. 그런데도 홍성훈 장인은 그때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못 말리는 사람들 16명을 세상에 고발합니다. 그들의 죄목(罪目)은 '세상을 무시한 죄'입니다. 그들은 도무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합리적이거나 상식대로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중략)전국을 누비며 나눴던 '못 말리는 사람들'과의 절절한 이야기들. 거기 그들이 있기에, 여기 우리들이 요만큼이나마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졸저, '못 말리는 사람들', 쿰란, 2010, pp.4-5)

진흥문화 회장 박경진 장로를 비롯, 16명의 삶의 현장을 고발한 문서. 그 가운데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명장(名匠) 홍성훈 이야기는 2회에 걸쳐 연재했을 만큼 몹시 소중했던, 필자가 단행본으로 출판했던 29번째 책. 그때 그는 이런 꿈 이야기를 했다.

-파이프오르간은 공기를 자극해서 공기가 춤을 추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리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악기입니다. 한국은 최적요건(最適要件)을 갖추고 있어 제작 중심 국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홍성훈의 과거를 추적하노라면 그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절감케 되는 것이다.

-옳습니다. 제가 젊은 날 춤추고, 피리 불고, 창을 했던 것이,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했던 것도 그렇고, 기타를 했던 것도 그렇고, 음악적 센스라든가 기계적인 메커니즘까지도, 그리고 독일에 유학, 파이프오르간을 짓는 공부에 투신하게 되고, 10여 년 도제(徒弟)로서 절차탁마(切磋琢磨), 한국인 최초로 오르겔바우마이스터가 될 수 있었던 것,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오르겔(orgel)은 풍금(風琴), 바우(bau)는 제작(製作), 마이스터(meister)는 장인(匠人). 홍성훈을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로마서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 28절).

#파이프오르간 건축현장

홍성훈 장인이 건축중인 파이프오르간 건축현장은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111-15번지, 서울대교구 소속의 천주교 화양동 성당. 3월 첫째주일 첫 미사를 드릴 예정으로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네에, 여기가 바로 파이프오르간 건축이 진행중인 작업현장입니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지라 이렇게 어수선합니다. 제단 뒤편 벽 좌우에 세워지고 있는 파이프들이 바로 오르간의 실체입니다.

450석 3층 높이 예배공간 파이프오르간 작업 속에서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는 1100개에 이르는 길고 짧은 요런 파이프들을 정면 제단의 좌우 벽면에 안치하는 오르간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한영석 주임신부님과의 대화로 시작되는 기획으로부터 설계도면 작성, 재료주문발주 등 건축과정에 6년 여 소요된 대장정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한영석 주임신부가 건축현장을 둘러보러 나오셨다. 소박한 차림에 질박한 말씀을 경청한다.

-제가 홍성훈 장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토록 좋은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것도, 새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것,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더욱이나 홍성훈 장인과 오광섭 작가의 작품을 제단에 모실 수 있게 된 것은 영광입니다. 성도님들께서 기뻐 찬양하며 이 작품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것을 그리노라면 황홀해집니다. 찬미 예수!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필자는 독자 여러분께 홍성훈 장인의 첫 작품을 꼭 좀 관람하시기를 권유하고픈 마음이다. 덕수궁 돌담길에 연하여 있는 고색창연한 대한성공회대성당 주교좌소성당, 거기에서 그가 마이스터 학위를 취득한 졸업작품 파이프오르간이 독자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보낸 파이프오르간

-고 목사님 안녕하세요. 우크라이나에서 온 임현영입니다. 선교보고차 잠시 나왔습니다. 한국기독공보에 절찬리 연재중인 '흔적을 찾아서'를 흥미진진하게 열독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선교현장의 '흔적'도 탐방취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 목사님 고향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해주신 양응칠 장로님이 저의 외증조부이신 것,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한밤중 예고도 없이 압박성(?) 카톡 음성통화로 필자를 위협하는 임현영 선교사. 그는 취재과정에서도 발설하지 않았던 홍성훈의 선행을 폭로(?)하는 것 아닌가!

-그가 우크라이나에 보내준 파이프오르간으로 우리 한국인 선교사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태도가 호의적이며 선교활동에 동력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임현영 선교사의 외증조부 양응칠 장로와 필자의 고향교회가 어떤 관계란 말인가? 의혹에 의문을 더해주고 있다.

-본 지방(백토리)은 미국 남장로회에서 파송을 받은 선교사 부위렴 목사의 선교지로서 구암교회(궁멀교회) 거주하시는 양응칠 장로께서 백마를 타고 오셔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고형일 등 제씨가 예수 믿기로 하고 구암교회에 다니다. (졸저, 군산지곡교회100년사, 쿰란, 2010, pp.203-204)

필자에게 고향교회가 의뢰, 집필하게 된 '군산지곡교회 100년사' 속에 양응칠 장로의 행적을 밝히고 있다. 그는 '백마를 타고와 복음을 전해준 장로'로 묘사, 전설적인 인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그런 인물의 외증손이니, 필자에게 큰 소리 칠만도 하잖은가.

-부끄럽습니다. 임현영 선교사님 선교활동에 보탬이 되셨다니 고맙습니다. 작은 파이프오르간 한대를 헌납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됐습니다. 그 일에 동참하신 분들께서 함구하시기로 약속하셔서 고 목사님 취재과정에서 발설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홍성훈 장인의 삶의 흔적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전화 속에서 수줍게 선행을 고백하는 그를 가슴으로 품으면서, 그의 꿈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꿈이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북한의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그리고 천주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을 지어드리고 싶습니다.

"우수경칩엔 대동강도 풀린다"- 어른들이 말씀하지 않았던가. 우수(2/19), 경칩(3/5)이 내일 모레, 카렌다 속에서 잔뜩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남북이 꽁꽁 얼어붙은 요즘 같은 날들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홍성훈 장인의 고백을 들으면서, 필자는 최근 리원량(李文亮) 우한중앙병원 안과의사가 천국으로 떠나면서 남겼다는 한편의 글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된다.

-나는 갑니다.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가야 할 시간, 나루터는 아직 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이 눈가에 눈송이만 떨어집니다.(중략) 내 묘지명은 한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他爲蒼生說過話)".

글/사진 고무송목사(한국교회인물연구소장/전 본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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