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며
[ 땅끝편지 ]
작성 : 2020년 02월 13일(목) 00:00 가+가-
일본 편 6

동료의 자녀 졸업식 참석을 위해 최초로 낙농학원대학을 방문했을 때 박미애 선교사.

니시나수노교회의 청빙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낙농학원대학의 종교주임 다까하시라고 자기 소개를 하는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낙농학원대학에서 일본청년들을 위한 선교를 함께 하자는 것과 낙농학원대학에 대한 자료를 보내겠다고 했다. 아시아학원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을 통해 들었다는 것이다. 아시아학원의 자원봉사자들 중에 낙농학원대학생들이 몇 명 있었고, 그들 중 다까하시 선생 연구실 소속 학생도 있었던 것이 나중에서야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번 일이야 말로 차원이 다른 뜬금없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대학에서 가르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다까하시 선생은 낙농학원대학에 대한 자료를 보내 주었고, 니시나수노교회의 목회,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 학업을 하는 동안 매년 성탄인사와 함께 언제가 되면 낙농학원대학으로 올 수 있냐고 끈질기게 물어왔다. 그렇게 하기를 6년, 나는 신대원을 마쳤고, 선교학을 전공하고, 목사안수도 받았다. 낙농학원대학의 교원으로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에 있는 낙농학원대학은 아시아학원에 있었을 때, 동료의 자녀 졸업식 참석을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대학에 교원 면접을 위해 온 것이다. 면접에서 학장은 물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까?" 나는 속으로 "이력서를 보면 나의 경력은 모두 교회 전도사와 선교사가 전부인데, 왜 이런 질문을 하지"라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은 없지만, 교회에서 청년부를 지도한 경험과 아시아학원에서 청년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아직 나의 일본어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묻지도 않은 답변까지 했다. 그런 나에게 학장은 "낙농학원대학에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교수들은 많이 있다. 박 선생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낙농학원대학에 새 바람을 넣어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2003년부터 낙농학원대학에서 5년 임기의 청탁교수로 기독교학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가 납득하기 위해 여러 번 생각한 결론은 학력 못지않게 경력을 중시하고, 기독교인 지도자가 극소수인 일본 사회이기에 희소가치의 원칙에 의해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능치 못하실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마도 내가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면,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가 자격이 있으니 가능했다 라며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대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학장을 포함해 나를 면접한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은 한 사람도 없었고, 나를 추천한 종교주임은 면접을 받는 나 보다도 더 긴장하여, 밖에서 기도만 하고 있었다. 사람의 생각과 힘으로는 불가능한 기적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나에게 "어떻게 낙농학원대학에서 가르치게 되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청년부를 지도하고, 선교지에서 청년들과 생활한 것이 경력으로 인정받아 대학교수로 채용됐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참 기쁘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의 환상을 본 선교사 바울처럼, 나도 일본의 청년선교를 위한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열려진 선한 길을 걷게 되었다.

박미애 목사/총회 파송 일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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