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한 신음소리
[ 주필칼럼 ]
작성 : 2020년 02월 07일(금) 10:00 가+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탓인지 올 겨울에 서울 시내를 흐르는 한강은 얼지 않았다. 겨우 물살이 느린 곳에 얼음이 살짝 덥혔을 뿐이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조 말기까지 겨울철 얼음을 떠서 빙고에 넣어 여름철에 사용했는데,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서기 505년 11월에 신라 지증왕이 왕명으로 얼음을 저장한 기록이 있다. 겨울에 빙고(氷庫)에 얼음을 저장해서 여름에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예조에 맡겨서 빙고를 운영했다.

종묘에서 제사에 쓸 얼음을 보관하는 동빙고는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 8번지에 있다가 용산구 동빙고동으로 이사했다. 동빙고의 얼음은 1만 2044정(丁)으로 무게가 226톤 가량 되었다. 1정은 최소 두께 12cm, 둘레 180cm 이상 되는 덩어리를 말한다.

서빙고에는 생활에 사용하는 얼음을 보관했다. 용산 미군기지 남쪽 캠프에 위치한 해발 65.5m 야산 둔지산(屯地山) 기슭에 있었는데, 13만 4974정이나 되는 얼음을 보관했다.

왕실에서 사용하는 얼음은 창덕궁 안의 내빙고에 보관했다. 해마다 2만 정의 얼음을 한강에서 떠왔다. 내빙고는 용도에 따라서 얼음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물을 들여서 구분했다.

빙고는 서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경주나 안동 등지에 6개의 빙고가 남아 있다. 이들은 대개 18세기 초 영조 대에 축조되었다. 경주석빙고는 보물 제66호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고, 안동석빙고는 제305호, 창녕석빙고는 제310호, 청도석빙고는 제323호, 현풍석빙고는 제673호, 영산석빙고는 제1739호 보물로 지정되었다. 북한이 문화유물 69호로 지정한 해주석빙고는 고려 초기에 축조되어 영조 11년에 개축했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임금이 하사하는 얼음으로 빙수를 만들거나 과일을 얼음 쟁반에 담아서 먹었다. 고기나 생선을 냉동보관하기도 했다. 7월에 안동에서 잡힌 은어를 얼음을 가득 넣은 상자에 담아서 한양까지 진상했다.

6월 초부터 9월 말까지 정2품 이상의 문무관리, 종친 등에게 이틀 간격으로 얼음을 나누어 주기도 했고, 활인서의 환자와 의금부나 전옥서의 죄수들에게 얼음을 배급하기도 했다. 관영 빙고에 20만 정, 3750톤의 얼음을 보관했다. 사빙고의 저장량은 300만~500만 정으로 5만 6250톤에서 9만 3750톤 가량 된다. 흑석동, 노량진, 마포, 양화진 등지에 목빙고를 지어서 얼음을 넣어 두었다. 1인당 소비량으로 따지면 무려 70~100kg에 달했다. 19세기 한양은 가히 녹지 않는 얼음도시였다.

'동국여지비고'에 따르면 음력 12월이나 1월에 새벽 2시쯤 얼음을 떴다. 도끼나 톱으로 길이 1척 5촌(45cm), 너비 1척(30cm), 두께 7촌(21cm)의 덩어리로 떼냈다. 무게가 5관(18.75kg)쯤 되었다. 한강에서 잘라낸 얼음덩어리 세 개를 지게로 나르거나, 소달구지에 싣고 옮겼다.

겨울철에 얼음을 떠서 여름에 배급하기 위해서 관리를 두었다. 얼음을 뜨는 빙부를 동빙고에 10명, 서빙고에 40명 씩 두었고, 장빙군(藏氷軍)으로 인근 백성들을 징발했다. 추운 겨울에 얼음을 뜨는 일은 매우 고달픈 부역이었다. 변변하지 못한 옷에 짚신을 신고 얼음 위에서 떨면서 일했다.

고통스러운 벌빙(伐氷) 작업은 조선왕조와 함께 끝났다. 1925년에 냉장고가 발명된 뒤로 얼음은 더 이상 '백성의 눈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얼지 않는 한강이 낮은 음으로 내는 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법적 구속력도 없는 '기후 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이 30년 가까이 되어도 온실가스 배출은 감소하지 않고 있다. 1992년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첫 번째 기후협약 당사국 모임을 가졌다. 2018년 12월에 제24차 당사국 회의가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릴 때 그레타 툰베리는 스톡홀롬의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를 시작했다. 툰베리는 "여러분들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눈앞에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한강에서, 다시 일어나는 호주의 산불에서 생명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먼 나라 다음세대의 날선 외침도 나직한 신음소리로 다가온다.



변창배 목사/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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