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난다면?
[ 1월특집 ]
작성 : 2020년 01월 24일(금) 00:00 가+가-
한국교회와 가짜뉴스-4.가짜뉴스를 뿌리뽑기 위해선?
가짜뉴스에 의한 탈진실 시대의 기독교윤리적 대응
우리는 지금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탈진실(post-truth)'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단어는 옥스퍼드 사전이 2016년에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으로, '특정한 개인의 감정이나 신념이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일'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는 당시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이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어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들에 의해 이루어진 게 아니라 소셜 미디어 등의 적극적인 활용에 의해 생산된 가짜 뉴스의 막대한 영향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시류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에서도 다르지 않다. 아예 가짜 뉴스와 허구가 진실을 덮어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의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에서의 가짜 뉴스 활용은 진실 왜곡과 허위 사실 유포의 정도가 도덕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 되었고, 각종 악성 루머와 악의적인 댓글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유명 연예인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는 취재 과정의 정직과 보도의 객관성을 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언론기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또한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은 의혹성 기사나 소위 '카더라통신'을 이용하여 SNS의 권력화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가짜 뉴스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전 세계의 미디어 생태계를 때로는 오염시키면서 지배하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인터넷 통신망의 급속한 확산과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따른 소셜 미디어를 통한 글로벌 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원한 진리(truth)이신 예수(요 14:6)를 믿고 따르기를 원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모습은 어떨까? 사회에서 이처럼 가짜 뉴스에 의한 폐해가 심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이념과 신앙적인 성향의 다름에 따른 갈등이 가짜 뉴스에 의해 점차 심화되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지금의 교회는 이천 여년 전에 세상의 다수가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던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시작되었다. 그 당시 억압과 차별의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던 유태인들의 오랜 소망이었던 메시야가 바로 그 분이라는 소문은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기대감을 안겨다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해방과 자유를 꿈꾸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다수가 바라던 것과는 달리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무력해 보이는 죽음은 시대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듯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나아가 그 분의 부활과 승천도 거짓과 루머로 왜곡되기 일쑤였고, 그래서 초기 교회의 복음 전도자들은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면 진실된 소수의 선플(sunfull, full of sunshine, 선한 댓글)로 다수의 악플(惡性 reply, 악한 댓글)을 이기고자 했던 이들이었다고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진리는 반드시 어둠을 몰아내고 그 빛의 능력을 드러내어 승리하기 마련이고, 결국 오늘날까지 생명과 구원의 역할을 교회가 감당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난무하는 가짜 뉴스에 의한 탈진실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윤리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먼저 예레미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백성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면서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렘 6:13)"고 그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이것은 가짜 뉴스를 생산하여 배포하기에 젖어 있는 이들의 내면에 있는 추악한 욕심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말씀이다. 이어서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라는 말씀으로 이들의 잘못은 소외된 이웃과 가난한 이들의 상처에 무감각하고, 대신 광신주의와 거짓된 평화 선포로 정의를 왜곡하는 데 있음을 비판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사회에서 작은 자를 우선으로 돌보며 자신의 책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가 통찰한 바와 같이 세상에서의 공동선(common good)을 이루도록 공공윤리적인 차원에서 "사람들이 신앙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잘못 이용하는 (소위) 기능장애에 저항하도록" 책임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만일 주변에서 절대 다수가 진실을 향하여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어떻게 가능할까? 잠언에서 지혜자는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고 교훈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기 위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 12:2)"해야 하는데, 이는 다름이 아닌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택하는 데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면 가짜 뉴스의 홍수 가운데 당당히 서서 진리를 외치도록 하자. 가짜 뉴스를 말씀과 기도로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포장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나약함과 죄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는(딤전 4:5)" 진리의 수호자가 되도록 하자. 매일의 삶 가운데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더 세밀하고 온전하게 닮아가는 열심을 품고, 주님처럼 때로는 진실이 담긴 침묵의 무거움을 보여주자. 나아가 경제적인 청빈만이 아닌 사고와 언어의 청빈을 이루기 위해 단순한 삶의 방식으로 생태적 영성을 훈련하는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박용범/호남신학대학교 기독교윤리학 교수·월광교회 영어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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