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곁에 누가 있습니까?
[ 논설위원칼럼 ]
작성 : 2020년 01월 21일(화) 00:00 가+가-
한국영화 '기생충'이 역사상 최초로 미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국제극영화상뿐 아니라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까지 포함된 것은 기념비적 사건이다. 극단적 빈부격차의 민낯을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극찬을 받으며 한국을 넘어 글로벌 공감코드를 적중했다.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라는 사회적 이슈를 영화를 통해 탁월하게 표현한 것이 기존수상의 틀을 깨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게 만들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할리우드 영화 '조커'의 불편하지만 불쾌하지 않은 찬사도 이러한 흐름에 닿아 있다. 이렇게 영화의 흥행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러 있다. 우리는 '기생충과 조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배적 문화가치와 교회의 영적 상태의 관련성을 통찰한 신학자 폴 틸리히에 따르면 고삐풀인 한국 자본주의와 극단적 물신주의 현실은 한국교회의 영적 상태이다. 기생충에 나타난 불평등과 양극화된 계층의 참혹한 현실은 교회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고 교회가 터하고 있는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는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반영한다. 한국교회도 양극화의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돈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한국사회에서 늘 주눅 들어 기생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들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믿음의 공동체일까? 월거지, 전거지, 빌거지, 이백충이라는 단어들은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이 된 단어이다. 월거지는 월세를 사는 거지, 전거지는 전세를 사는 거지, 빌거지는 빌라를 사는 거지, 이백충은 부모들이 월 이백을 버는 거지라는 뜻이다. 한국사회는 이렇게 일상에서 그저 가난하다는 이유로 온갖 사회적 멸시와 편견을 달고 살아가야 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분하고 오로지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선이 만연해 있는 기생충과 조커의 사회이다. 이렇게 상처받고 억울하고 분노에 찬 사람들이 교회공동체를 통하여 희망을 찾고 위로받고 있는가? 교회는 이 지독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영화 기생충 박사장처럼 가난한 자들을 향한 경멸과 혐오의 시선이 그의 가족들처럼 착한 척 고상한 척 하지만 본능적으로 표현되는 무시와 배제의 태도가 교회 안에서는 낯선 모습일까?

거대한 도시 서울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 비존재들처럼 고통스럽게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 안전망이 부재한 사람들에게 무서운 것은 혼자라는 고립이고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박탈감이며 때로는 스스로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영혼의 잠식이다. 이웃사랑을 복음의 핵심진리로 따르는 한국교회는 누구 곁에 있는가? '조커의 응징'에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심정적으로 그의 응징을 응원하는 이 세계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노력하지 않아도 가난하게 되고 노력하지 않아도 부자가 되는'부의 세습'이 고착화되어가는 현실이 두렵기까지 하다. 이 극단적 양극화의 현실에서 구별되지 못한 교회의'부의 되물림', 우리들이 부정하고 싶은 뼈 아픈 현실이다. 예수님은 항상 세리와 죄인과 함께 했고 가난한 자들이 있는 그 낮은 곳에 계셨다. 예수님이 있으신 곳에, 그 곳에 교회는 그들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 세계의 낯설고 먼 이웃의 고통과 돈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잊혀 진 사람들의 참혹한 현실에 결국 주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교회는 물어야 한다. 교회 곁에 누가 있어야 하는지 누구와 함께 기쁜 소식을 나누어야 하는지 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장 빛나는 곳, 그 낮은 곳에서 한국교회가 희망으로 빛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은혜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 문화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