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교회와 선교사의 신뢰 관계
[ 땅끝편지 ]
작성 : 2020년 01월 16일(목) 00:00 가+가-
일본 편 3

필자가 사역했던 놋포로교회의 전경.

그래도 늘 위로가 되었던 것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기가 쉽지 않고 전도 대상을 찾기조차 어려운 일본 사회에서 아시아학원의 공동체 구성원, 방문객들에게 함께 생활하고 함께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원봉사자나 방문객들과는 함께 밭에서 잡초를 뽑고 닭장의 닭들을 돌보고 농사 일을 하고 부엌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의 순환과 먹거리와 생명에 대해 그리고 그 신비스러움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사랑 하시는 분이라고 전한다. 그들은 내가 아시아학원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전하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금방 복음을 받아 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의 씨를 뿌릴 수 있었고 후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

영적 전쟁터가 어디 선교지 뿐이겠는가. 그러나 특별히 선교지는 더욱 영적 전쟁이 치열한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시아학원은 종교다원주의라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러기에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매년 추수를 마치고 행해지는 추수감사 축제는 아시아학원 프로그램의 절정을 이룬다. 이틀에 걸쳐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2000~3000명의 방문객들이 참여하는 축제이다. 중심이 되는 것은 추수 감사예배이지만,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장이기도 하다.

한번은 예배에 문제가 생겼다. 종교적 배경이 다양하다 보니 예배 또한 혼합 종교의 예배가 되어 버렸다. 이 일에 대해, 아시아학원에 기독교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한국의 후원교회에 보고를 했다. 후원교회에서는 선교사 본국 송환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해 일시 귀국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국 송환은 선교사에게 쉼을 주기 위한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아시아학원의 상황을 보고 받은 당회에서는 선교지에 대해 재검토도 했지만, '언젠가는 선교지를 떠날 때가 오겠지만 아직은 아니다'라고 하는 선교사의 결정을 존중해 주고 선교사를 전적으로 신뢰해 줬다. 그리고 후원교회는 따뜻한 격려와 함께 다시금 선교지로 보냈다. 이러한 후원 교회와 선교사의 신뢰관계는 필자가 사역을 했던 교회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후원 교회에서는 늘 선교지로 파송한 선교사에게 딸을 시집 보낸 친정부모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후원 교회와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지금까지 변함없는 신뢰 관계를 유지하며 든든한 기도후원 가운데 사역하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당시의 선교 사역은 곧 교회 개척이었다. 나는 교회 개척도 목회도 아닌 에큐메니칼 선교동역자로서 기관 사역을 하면서 때로는 내가 이 일을 하러 일본에 선교사로 왔는가? 후원 교회에서는 이 일을 위해 선교사를 보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라는 회의와 의문이 생길 때가 있었다.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열매를 거두시겠지"라고 늘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내 눈으로 열매도 보고 칭찬도 받고 싶은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놀라운 것은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다. 어느 날, 아시아장로교신학자 심포지움에 참석하신 서정운 총장 (전 장신대 총장)께서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아시아학원을 방문하셨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사역에 대한 갈등을 말씀 드렸을 때 "선교지에서 사는 것이 선교"라며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여성 안수도 허락되었으니 한국에 들어와 목사 안수를 받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그 후, 필자는 아시아학원에서의 제2기에 걸친 8년 사역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했다.

박미애 목사/총회 파송 일본 선교사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