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여 에베소여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작성 : 2020년 01월 10일(금) 00:00 가+가-
6
요한복음의 기록장소에 대해 다양한 추정들이 있지만 고대의 증거들은 압도적으로 에베소를 지지한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관계는 에베소를 더 유력하게 만든다. 계시록은 에베소 일원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하다. 요한복음에 반회당적 분위기들이 많이 나온다. 계시록에서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모임을 '사탄의 회당'(3:9, 참조 2:9)이라는 등 노골적인 공격이 나오는데 당시 에베소의 분위기에 어울린다. 또한 요한복음은 서두에서부터 세례요한과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비교한다. 세례요한은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는 언급과(1:8),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기뻐했다는 보도는(3:22~30) 요한복음의 저자가 세례요한 종파를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 만난 '어떤 제자들이'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던 사실을 보도한다(19:1). 에베소 지역 중심으로 강력한 요한 추종 그룹이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쿰란문서와의 병행들이 요한복음과 에베소서에서 발견되는 점, 또 에베소 지역에 가현설적 경향, 초기 영지주의의 경향이 성행했을 법한 가능성도 이 지역저작설에 무게를 더한다.

신약의 역사 연구에서 예루살렘, 안디옥, 로마가 많은 주목을 받아 왔지만, 사실 에베소의 중요성은 이 도시들에 못지 않다. 바울서신들에서 마게도니아, 아가야, 아시아는 늘 선교의 주요근거지로 등장한다. 에베소는 바울이 가장 큰 선교의 성공을 맛본 곳이면서 가장 심각한 반대에 직면한 곳(행 19), 가장 쓰라린 경험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전 15:32, 고후 1:8). 바울은 에베소에서 황급히 도망 나온 후 다시 그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에 불러 고별설교를 해야 했다(행 20:17~35). 다른 도시에서 유례가 없던 일로 에베소의 중요성과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동시에 보여 주는 대목이다. 바울의 감동적인 고별설교는 에베소라는 지역교회 뿐 아니라, 당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기는 바울의 당부로 기능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누가행전은 에베소에서 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서가 에베소에서 집필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지만, 누가행전이 그리는 초기 기독교 운동에서 에베소의 중요성은 확고하다. 그렇게 보면 에베소는 요한복음, 요한서신, 요한계시록이 유래한 도시이며, 누가행전에서도 중심적인 도시이며, 에베소서, 디모데전후서의 수신지가 된다. 골로새서도 에베소서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베드로서신도 소아시아 중심의 지역에 보내졌다는 점에서 에베소와 관련되어 있다. 이쯤되면 에베소가 신약의 가장 중요한 도시라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은 연유도 잘 모르면서 죽이라고 외치는 위험한 군중들을 만난다(행 19:23~41). 사도행전은 이 군중들의 모습을 21~22장에서 바울과 관련하여 소란을 일으키는 예루살렘 군중들의 이미지와 겹쳐서 제시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군중들은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친 이들이다.

요한복음은 이 예루살렘 군중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충격적인 묘사를 제시한다. 예수를 석방하려고 애쓰는 빌라도에게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9:12)"라고 한다. 빌라도가 "보라. 너희 왕이로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게 못 박으랴"하자,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19:15)"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의 다스리심, 곧 왕 되심을 꿈에도 소원으로 삼고 살던 언약 백성의 입에서 나온 말로는 충격적이다. '충신'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의 '필로스'이며 라틴어의 '아미쿠스'이다. '가이사의 친구'라고 직역할 수 있다. 이 어구가 호칭으로 확립된 것은 베스파시아누스(69~71년) 황제 때의 일이며, 소수의 최고위직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주후 30년경의 유대총독인 빌라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호칭이 좀 더 폭넓게 사용되었을 가능성, 예루살렘 시민들이 빌라도에게 과분한 이 호칭으로 빌라도를 추켜 세우며 압박했을 가능성도 있다.

돋보이는 것은 군중들의 영악함이다. 총독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총독이 무죄판결을 확신하는 피의자를 사형에 처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다. 요한이 에베소에서 이 글을 썼다면 자신의 시대에 폭력적인 군중들의 정치적 준동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요한복음에 묘사된 예루살렘 군중의 무도함에서 우리는 요한이 경험했던 에베소 군중들의 위험성을 읽어낼 수 있다.

그 폭도들은 바울의 사역을 일거에 뒤엎은 이들이기도 하다. 누가 역시 에베소 군중들의 폭력성을 경험하면서 바울의 기억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초대교회가 경험했던 박해의 대부분은 위로부터, 즉 정치권력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옆으로부터, 즉 무질서한 군중들로부터 왔다. 이들의 위협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유대교 회당으로부터의 공격도 감당하면서도 위험한 도시 에베소를 떠나지 않고 복음의 삶을 살아내었던 공동체, 세상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그 세상의 하나님의 사랑이 알기를 간절히 원했던 공동체의 고백이 요한의 예수 이야기에 담겨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고 통곡하셨듯이, 요한공동체는 '에베소여, 에베소여'하고 눈물로 부르짓던 공동체였을 것이다.

박영호 목사/포항제일교회·전 한일장신대 신약학교수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