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픔을 우리도 느끼게 하소서"
[ 신년특집 ]
작성 : 2020년 01월 02일(목) 08:12 가+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약자 돌본 기독교

1955년 밥 피어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 /사진 월드비전

설립자 해리홀트, 버다홀트 부부 /사진 홀트아동복지회
올해는 한국전쟁 70년을 맞는 해이다.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가 전쟁이다.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으로 한국군 62만 여명과 유엔군 15만 여명 등 77만 여명이 전사, 부상, 실종됐고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이재민은 1000만여 명이 넘었다. 아직도 종전 선언을 하지 못하고 휴전 상태에 있는 현실은 우리 민족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그러나 전쟁이 만들어 놓은 폐허의 한모퉁이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피어나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셀 수 없을 정도로 고아들이 넘쳐나자 기독교 외원 단체들은 한국에 들어와 이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국의 사회복지학계에서는 외원단체들의 사역을 한국 현대 사회복지의 시초로 보고 있다. 이렇게 6.25 직후 외원 기독교 구호기관들은 고아와 과부로 상징되는 고난 당한 이들을 돌봤다. 본보는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쟁 고아를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는 단체 중 홀트아동복지회, 월드비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설립 초기 감동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고아들에게 가정을 선물해준 홀트아동복지회

1954년 미국 오리건주의 작은 도시 크레스웰에서 목재 회사를 운영하던 50세의 해리 홀트는 한 고등학교 강당에서 '아메라시안 한국 고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고아들에 관한 내용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를 본 해리 홀트는 부인 버사 홀트와 함께 한국의 전쟁고아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홀트 부부는 이미 6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그는 식구 수대로 8명의 한국고아들을 입양하기로 했는데 8명의 아이들을 입양하기 위해서는 한 가정에 2명까지만 입양을 허용했던 당시 미국 난민구호법을 바꾸어야만 했다. 홀트 부부는 이를 위해 의회 앞에서 캠페인을 벌였고 미국의회에 '홀트법안'이라고 명명된 '특정 전쟁고아들의 구제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아이들 입양에 나섰다.

홀트 부부가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입국한 것은 1955년. 그는 8명의 고아를 입양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모든 아이들이 가정에서 보호받고 교육받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재단법인 홀트양자회를 설립하고, 경기도 고양에 일산원을 세웠다.

해리 홀트가 1964년 별세한 후에도 홀트양자회의 사업은 계속됐다. 1964년 아내 버사 홀트와 딸 말리 홀트는 전쟁고아에서 중증 장애아동까지로 사역의 대상을 넓히며 현재의 홀트아동복지회(한국)와 홀트국제아동복지회(미국)로 발전시켜 지금까지 20만명이 넘는 전세계 고아들을 입양시켰다. 2000년 7월 아내 버사 홀트는 사망하면서 고양시 일산 홀트일산복지타운에 있는 남편 묘지 옆에 나란히 안장됐다.

홀트 부부의 셋째 딸인 말리 홀트는 부모가 한국에 들어올 당시 새크래드 하트 간호전문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말리 홀트는 불우한 이들을 보살피겠다며 한국에 정착하기로 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는 60여 년간 장애인과 고아, 미혼 부모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자원봉사자로 일해 왔다. 팔순을 넘긴 고령에도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중증 장애인들을 몸소 돌봐 '말리 언니'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84세를 일기로 제2의 고국 한국에서 눈을 감은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까지 자신의 방도 없이 4명의 장애인과 함께 지냈다.

CCF가 한국지원을 시작한 1948년 당시 우리나라 고아원, 대구 육아원 설립시의 직원과 아동 /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기독교 관점에서 아동을 돌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1938년 미국인 J. 칼빗 클라크 목사는 중국의 고아들을 돕고 열악한 아동들의 복지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중화아동복리회(CCF, China Children's Fund, 이하 CCF)를 만들어 후원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클라크 목사는 아시아의 다른 빈곤국가를 찾던 중 당시 CCF 극동사업본부장이었던 밀스 목사의 요청에 따라 1948년 한국 지원을 결정했다. CCF 의 한국지원이 시작된 1948년 10월 15일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창립일이다.

1948년 해방 직후 어려웠던 한국 아동들을 위해 CCF는 서울구세군후생학원, 서울구세군혜천원, 절제소녀관 등 3개 시설에 있는 400명의 아동을 도우며 시작됐다. 시설 아동의 대부분은 북한에서 탈출한 피난민 자녀로, 거리를 떠돌다 시설에 수용돼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고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CCF의 고아지원사업은 한국에 초점을 맞춰 모든 지원을 하게 됐으며, 196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약 3 만명의 아이들을 도왔다.

이와 함께 중국의 공산화로 지원 사업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 CCF는 'China Children's Fund'에서 Christian Children's Fund로 이름을 변경하고 한국지원을 본격화했다.
CCF가 한국지원을 시작한 1948년 당시 우리나라 고아원, 대구 육아원 설립시의 직원과 아동 /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CCF는 이후 본격적으로 시설 아동 지원 중심의 사업을 전개해 1952년에는 전국 27개 시설까지 지원을 확대하고, 본격적인 국내 사업을 위해 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재단법인 재한기독아동복리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했다.

1960년대에는 시설보호 중심의 사역에서 진일보해 가정 중심의 방향으로 복지사업을 전환했다. CCF는 1963년 '아펜셀라어린이회'를 창립, 14개 분실을 개설하고 가정사업을 전개했다. 아펜센라어린이회 창립을 계기로 가정해체 이후의 문제 발생에 따른 사회복지서비스의 개입보다 가족기능을 회복하고 강화하는데 초점을 두는 사전 예방적 복지서비스 접근을 시도해 당시 사회복지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CCF는 한국이 경제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미국의 후원자들이 한국 지원을 반대하면서 1976년부터 매년 10%씩 지원을 감소해 1986년 최종적으로 지원을 종결했다. CCF가 지원을 이어나간 38년간 1억 달러, 10만명을 지원한 것으로 추산된다.

#고아와 미망인, 장애인 돌본 월드비전

밥 피어스 목사는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 부흥집회 설교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남대문교회에서 부흥집회를 하고 1만 달러의 원호금을 한국교회에 전해주었고, 이듬해 5월에는 한경직 목사와 만나 영락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열기도 했다.

밥 피어스 목사가 프랭크 필립 박사와 함께 월드비전을 설립한 것은 그해 9월. 전쟁 중인 한국에 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그는 그해 10월 종군기자로 자진해서 한국을 다시 방문해 한경직 목사와 함께 피난민 구호사업을 시작했다.

영화제작자이기도 했던 그는 당시 한국전쟁과 고아들의 영상을 담아 기록영화를 제작해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밥 피어스목사는 전쟁으로 인해 급격히 늘어난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1951년 백선육아원과 다비다모자원을 비롯한 구호시설들을 세웠다. 전쟁 후반기에는 한국인 여성과 외국 군인 사이에 태어난 아동들이 버림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을 위한 일시보호소도 세워 지원했다.

1953년에는 정식으로 서울 종로 연지동 장로교선교부 사무실을 얻어 '한국선명회(현 한국월드비전의 전신)'라는 이름의 간판을 걸고 사무실을 열었다. 초대이사장은 한경직 목사, 중국에서 40년 동안 선교사역을 한 어윈 레이츠목사가 초대회장을 맡았다.

△전쟁고아 및 미망인 구호 △한센병 환자 구호 △장애아동 구호 △아동결연사업 등의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월드비전은 1954년에는 대구 동산병원 내 아동병원을 개원, 영세민 아동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장애아동들의 진료사업을 전개했으며, 1960년에는 월드비전에 가입된 시설마다 '어린목자회'를 조직, 시설아동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한 생활교육과 기독교교육을 실시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한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 전환을 준비, 1978년 미화 1만 달러를 모금해 저개발국가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국제월드비전에 전달하기도 했다. 1991년은 한국월드비전은 해외로부터 받던 원조를 멈추고 도움이 필요한 세계이웃을 향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설립자 밥 피어스 목사가 보던 성경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심장을 깨어지게 하는 일에 제 심장도 깨어지게 하소서!"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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