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작품 속 나니아 세계의 바탕은 '사랑'
[ 루이스다시읽기 ]
작성 : 2019년 12월 10일(화) 08:00 가+가-
<14> 판타지 문학과 사랑
"Narnia, Narnia, Narnia, awake. Love. Think. Speak."

(나니아여, 나니아여, 나니아여, 깨어나라. 사랑하라. 생각하라. 말하라.)

<마법사의 조카>에서 아슬란이 나니아를 창조하면서 외친 말이다. 나니아는 깨어서, 사랑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그러한 나라인 것이다. 나니아 세계에서는 "나무들이 걸어 다니고(Be walking trees), 동물들이 말하고(Be talking beasts), 물들이 신성하다(Be divine waters)." 나니아의 이러한 모습은 본래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상이었다.

'사랑하라!' 사랑은 루이스에게 핵심 주제중 하나이다. 루이스는 일찍이 명저인 <사랑의 알레고리>(The Allegory of Love, 1936)로 세계적인 석학의 명성을 얻었고, 24년 후에는 <네 가지 사랑>(The Four Loves, 1960)을 출간했다. '사랑'에 대한 루이스의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랑은 나니아 세계의 바탕이다.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최고의 사랑을 '깊은 마법'(Deep Magic)과 '더 깊은 마법'(Deeper Magic)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깊은 마법'은 아슬란의 아버지가 만든 법으로 나니아가 창조될 때 돌 탁자에 새겨 놓았다. 이 법은 나니아의 기본이 되는 법으로, 악을 행한 존재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이 법을 어길 수는 없다. 하얀 마녀가, 배신한 에드먼드의 처벌을 목소리 높여 주장한 근거도 바로 이 법이다. '깊은 마법'은 오직 '더 깊은 마법'으로만 극복이 가능하다. 즉 전혀 죄가 없는 순전한 자가 그 죄 값을 대신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깊은 마법'에서 자유로워 질 수가 있다. 이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아슬란은 에드먼드를 위해 자원해서 대신 죽는다. 나니아의 '깊은 마법'을 뛰어넘는 '더 깊은 마법'의 사랑은 <나니아 연대기> 전 7권에 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의 이야기들을 가장 함축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는 작품 속 여러 캐릭터들을 통해서도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캐릭터들 중에서 특별히 필자가 좋아하는 '말하는 생쥐 리피치프'(Reepicheep)와 관계된 사랑의 한 모습을 보자. <캐스피언 왕자>에 등장하는 리피치프와 그의 부하 생쥐들은 부상을 입으면서도 매우 용감하게 싸웠고, 이 전투에서 리피치프는 생쥐의 명예이고 영광의 상징인 꼬리를 잃는다: "'왜 네 부하들이 모두 검을 뽑아들고 있느냐?' 아슬란이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대장이 꼬리 없이 살아가야 한다면 저희도 모두 꼬리를 자르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 아슬란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너희들이 나를 이겼다. 너희들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기특하다. 리피치프, 너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 너의 부하들의 사랑을 위해서 … 너에게 다시 꼬리를 주겠다.'" 부하 생쥐들의 대장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에 감동받은 아슬란은 리피치프의 꼬리를 회복시켜 준다. 사소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작은 동물들도 서로에 대한 깊은 배려와 사랑으로 상처가 회복되고 온전해진다.

<새벽 출정호의 항해>에는 캐스피언 왕이 악조건 속에서도 기꺼이 자신의 것들을 양보한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 루시, 에드먼드, 유스터스를 위해 자신의 선실을 흔쾌히 내준다: "젖은 옷을 입고 계신 두 분을 이렇게 세워 놓다니, … 빨리 내려가셔서 옷을 갈아 입으시지요. 루시 여왕께 저의 선실을 기꺼이 제공하겠습니다. 그런데 저희 배에는 여자 옷이 없네요. 대신 제 옷이라도 입으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유스터스에게 자신의 침대를 내주고, 캐스피언 왕은 불편한 그물 침대를 사용한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호의를 베푸는 캐스피언 왕의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다.

<마법사의 조카>에는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향한 디고리의 애틋한 사랑의 모습이 나온다. 디고리의 슬픔과 어머니를 향한 사랑에 감동한 아슬란은 디고리를 도와주기로 약속한다: "나의 아들아, 나의 아들아, 나는 다 알고 있어. 슬픔은 위대한 것이야. 오직 너와 나만이 이 땅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우리 서로에게 도움이 되자." 디고리는 아슬란이 어머니를 낫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슬란의 명령에 순종하여 서쪽 황야에 가서 사과 열매를 따온다. 그리고 그 열매로 어머니의 병을 치료 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향한 디고리의 깊은 사랑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한 것이다. 루이스는 어릴 적 자신의 어머니가 병사한 아픔을 디고리의 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모습을 통해 승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식물에 대한 사랑, 동물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사랑 … 아마도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점점 더 추워지는 초겨울에 사랑으로 자신의 주위를 조금이라도 더욱 따뜻하게 녹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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