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말씀을 따라 개혁하자
제104회 총회 주제해설 ⑥성경이 말하는 개혁
작성 : 2019년 11월 15일(금) 19:13 가+가-
●구약의 말씀과 새로워지는 교회

교회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현재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백이나 체계나 교회의 자산에 어떤 것을 더 보충하고 양적으로 증가시키고 완성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아닐 것이다. 예레미야 5장 21절은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한다.

예레미야 애가의 기록자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복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다시 새롭게 된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옛적 같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롭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옛적 같이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중세의 개혁자들은 르네상스 사람들의 관념을 따라 '아드 폰테스(ad fontes)', 즉 '본질을 향하여'를 외치면서 신앙의 본질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아가서 16세기 종교개혁의 후예들도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개혁교회는 한 번 개혁되고 개혁교회의 체제를 갖추면 개혁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혁교회 체제 아래 있다고 자동적으로 개혁교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개혁교회야말로 인간의 죄성을 가장 처절하고 예민하게 주목하고 조심하는 교회이다. 개혁교회는 언제나 회개하고 신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다시 되살리는 교회이다.

교회가 목회적 돌봄이나 설교로 축약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성경이 목회의 목표에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만큼 성도들의 삶은 피폐해지며, 교회의 거룩한 능력은 상실된다. 현재 우리 교회의 침체는 바로 이런 무지함, 또는 참람함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최근까지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대 교회의 모든 윤리적 문제까지도 성경의 주되심에서 떠난 영적인 허탈함, 즉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표가 된다는 신앙 의식을 상실한 데서 발생되었다. 현대 교회에서 성경은 목회의 여러 가지 목회 수행의 수단이나 방편 중의 하나로 전락되어 간다. 그리고 성경이 설교자의 본문을 읽는 것쯤으로 회중에게 잘못 인식되어 있는 듯하다. 성경보다 목회가 우위에 있는 목회지상주의, 그리고 성경보다 설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설교지상주의는 개혁교회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교회의 현실이 그렇다면 그것은 현대 교회의 심각한 오류이며, 추한 우상 숭배이다. 교회의 모든 목표는 하나님의 임재의 현존인 성경이어야 한다. 성경의 말씀이 올바로 해석되고 선포되고 교육되며 실천되는 것에 교회의 모든 목표, 목회와 설교의 참된 목표로 교회 안에, 목회 안에 다시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곧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설교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가 성경 위에 세워져 있는 만큼 성경의 진리가 모든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모든 성도의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진리이어야 한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그 아래 존재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성서 주권을 교회에 선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교회나 지역 단위의 교회 또는 총회적으로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성회를 열고 성서 주권의 선포와 진리 운동을 추구하는 집회가 왕성하게 일어나야 할 것이다. 모든 성서의 해석은 성서신학을 실제적으로 사용할 때 가능하다. 더불어 교회는 신학교의 신학 이론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 침체의 원인을 신학교에 전가시키려는 잘못된 인식에 의해 신학교의 정상적인 신학 이론 교육이 위축되거나 제한받고 있는 현 상황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 교회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침체를 벗어버릴 수 있다.

최인기 / 서울장신대학교



●신약의 말씀과 새로워지는 교회

그리스도교는 개혁하는 종교이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종교다. 예수님은 말씀과 삶을 통해 자기 백성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셨으며, 기존 종교와 제도, 더 나아가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셨다. 마가복음 1장 14~15절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요약한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니라." 이전에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서 복음으로 새롭게 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으신 주된 이유는 기존 종교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셨으며, 바른 신앙의 길을 외치셨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유대 절기와 제도를 개혁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잘 기술하고 있다. 요한은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요 2:1~12)과 성전 정화 사건(요 2:13~22), 그리고 니고데모의 이야기(요 3:1~15)를 나란히 배열해 소개함으로 유대교를 상징하는 정결 예식, 성전, 율법의 시대는 지나가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한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죄악에 물든 세상과 신자들의 삶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복음에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를 통해 한국교회에 주어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 한국교회는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을 따라야 한다. 곧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엡 5:26). 둘째, 한국교회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져야 한다(27절). 그리스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기를 원하신다. 영광스러운 교회는 에스겔 16장 9~14절에서 언급한 신부 예루살렘의 화려함과 영광스러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셋째, 한국교회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모습을 간직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교회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참조 엡 1:4, 골 1:22).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표현은 구약성서에서 제의적인 상황과 윤리적인 정결함을 언급할 때에 자주 사용한다. 흠이 있는 것은 이방인들의 특징이며(참조 엡 4:19, 5:3), 깨끗함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구별되는 특징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해 그의 백성을 선택하셨다고 진술한다(엡 1:4). 또한 거룩하고 흠 이 없는 것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다(엡 1:4). 바울은 교회를 영광스러우며,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고 한다. 교회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모습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복음에 대한 교회의 응답으로 이미 이루어졌으나, 바울은 이 모습이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매일의 행동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몇몇 주석가들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자신을 깨끗한 신부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것은 우리의 옳은 행실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암시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이 지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온 백성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바울을 통해 주신 메시지를 기억하여, 말씀으로 거룩하여 지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선한 행실을 널리 드러내야 한다.

최흥진 총장 /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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