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강가에서 우리는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어요"
11.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사건
작성 : 2019년 11월 15일(금) 08:38 가+가-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해 놓은 미해군 정보수집보조함 푸에블로호(The Pueblo).

Michell B. Lerner 저, 김동욱 역 '푸에블로호사건(The Pueblo Incident)'.
이른바 '제너럴셔먼호 격침기념비'가 세워진 평양 대동강변 바로 밑, 거기 넘실대는 대동강 푸른 물결 위에 정체불명의 군함 한 척이 두둥실 떠 있다. 급기야 안내인은 그 배를 가리키며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인다.

-저거이 뭐냐하믄 우리 강토를 불법침략해설라무니 스파이질을 하길래 붙잡아다 놓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라는 배랍네다.

경천동지(驚天動地), 그렇다!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가 떠들썩했던 사건이었다. 세계 최강의 미국 군함이 북한에 나포되다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의아스럽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했던 사건, 그것이 '프에블로호 사건'이었다. 하나, 그게 언제였던가? 망각(忘却)이란 얼마나 허망한 요물이런가? 그토록 엄청났던 일이었건만, 기억 저편으로 숨어버렸던 푸에블로호 사건. 그 사건의 '흔적'을 평양에서 되찾게 될 줄이야!

-<워싱턴=로이터同和>미 국방성은 906톤급 해군정보수집보조함 푸에블로호가 (1968년 1월) 23일 하오 1시 45분(한국시간) 승무원 83명(장교 6, 사병 75, 민간인 2명)을 태운채 북한 해안 밖 40㎞ 거리의 동해 공해상에서 북괴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되어 북한의 원산항에 끌려갔다고 발표했다. 국방성은 푸에블로정보함이 이날 정오께 맨 처음 북괴 초계정 1척으로부터 "정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는 위협을 받고나서 얼마 후 현장에 나타난 다른 북괴 초계정 3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 아래 납북되어 갔다고 밝혔다. 이날 이 미군 정보함이 나포된 해상은 동경 127도 54.3분 북위 39도 25분으로 북한 해안에서 약 40㎞ 떨어진 동해의 공해상이었다. 국방성 관리들은 공해상의 나포 과정에서 무기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총격전이 일어났다는 시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1968년 1월 24일자 경향신문 1면 톱뉴스를 검색, 긴박했던 상황을 복기(復碁)한다. 프에블로호 사건은 북한 124군 특수부대가 청와대 습격을 시도했던, 이른바 1.21사태 이틀만에 터진 것이어서,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최대의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던 사건이었다. 미국 대통령 린든 B.존슨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소집,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사태 이후 처음으로 공군 및 해군 동원령을 내렸다. 미국은 베트남 전선으로 향하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구축함 2척의 항로를 급회전, 한반도 원산 앞바다로 보냈고, 핵폭탄을 탑재한 B-52전략폭격기 및 F-105전투기 수십대를 미국과 일본에서 발진, 한국의 군산과 오산공군기지로 전진배치시켰다. 상황이 급박했다.

#'바빌론유수(幽囚)'

평양 대동강변에 떠있는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착잡했다. '바빌론 유수', 그 현장을 보는 것 같았으며, 새삼 전률처럼 내 가슴에 꽂히는 멜로디가 있었다. 자마이카 출신 혼성 4인조 보컬그룹 보니엠(Boney M.)의 '바빌론 강가에서'(The Rivers of Babylon).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 있었어요/ 우리는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어요/ 사탄이 우리를 아주 멀리 끌고 왔어요/ 그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래요/ 우리가 어찌 노래를 부를 수 있겠어요/ 낯선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하필이면, 100년도 뛰어넘는 1866년,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 격침 현장에 승전탑(勝戰塔) 마냥 세워놓은 기념비 바로 아래, 푸에블로호를 나란히 띄워놓은 저의는 한(恨)과 욕망(慾望)의 제물(祭物) 아니겠는가.

-미국 해적선 '샤만'호는 미국 자본주의의 아세아 침략의 척후대였다. 따라서 샤만호의 우리나라 침입 사건은 단순히 미국 해적무리들이 우발적으로 감행한 침입 사건이 아니라, 19세기 60년대 미국자본주의의 아시아 침략의 일환으로서 우리나라를 예속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침략책동이었다.(조선전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0, pp.68-69, 평양)

그렇다. 북한 당국은 1866년,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The General Sherman) 사건과 한 세기 지난 1968년, 미 해군함 푸에블로호(The USS Pueblo)를 자본주의 외세(外勢)와의 투쟁이란 맥락으로 서로 연결시켜 놓고 있으며, 이들 두 사건을 3대에 걸친 김일성 왕조 세습체제와 밀착시킴으로써 김 씨 가문의 애국혈통(愛國血統)왕조체제(王朝體制) 확립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는 제너럴셔먼호 격침의 선봉장으로 정착시켜 놓았으며, 김일성은 푸에블로호 나포 진두지휘자로 자신의 이미지를 굳힘으로써 북한체제를 이끄는 데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들 김정일은 푸에블로호 사건 자체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원산항에 나포해 놓은 그 군함을 사건 발생 31년만인 1999년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겨놓아 혁명적 교육현장으로 활용, 푸에블로호를 통해서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키고 제국주의 혐오에 대한 선전효과를 극대화시켰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 씨 왕조 3대 세습 후계자 김정은은 푸에블로호 사건과 많은 시차를 두고는 있지만, 이미 혁명사적지로 성역화 작업을 마친 제너럴셔먼호 격침기념비와 푸에블로호 정박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 인민의 애국심과 일체감을 조성하는데 기여토록 활용했던 것이다. 그와 함께 푸에블로호 사건을 영화와 각종 매체의 소재로 활용했으며, 포스터와 결합된 빈번한 매스미디어 보도, 우표제작, 사진 전시회 등에 활용함으로써 김 씨 일가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민중에게 홍보하는데 힘을 기울였던 바, 호재(好材)와 절호의 더블찬스였던 것이다.

#푸에블로호 사건과 미국의 딜레마

푸에블로호에 대한 미국 존슨 행정부의 초기 인식은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사건의 배경을 소련과 북한이 공모,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과 한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시도 등으로 해석하는 데 머무르고 있었다. 실제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구조적 틀 속에서 동맹국인 한국을 안심시켜야 하는 동시에, 나포된 승무원들을 본국으로 송환해야 하는 두 가지 목표가 서로 충돌하는 딜레마 속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진행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푸에블로호 사건은 미국과 북한의 비공개 판문점 협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으며, 30여 차례의 비밀회담 끝에 회담개시 325일만인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미군포로 귀환이 이뤄지게 됐던 것이다. 결국 함장 부커 중령 이하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이 공개적으로 북한 영해침범 행위를 자백하는 문서에 서명, 가까스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푸에블로호 함장 로이드 부커 미 해군 중령과 승무원들은 북한에서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고 고문 후유증으로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으며, 피랍 11개월만에 풀려난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Mitchell B. Lerner/ 김동욱역, '푸에블로호사건', 높이깊이, 2011, 서울)

#치욕(恥辱)의 흔적(痕跡)지우기

결국, 북한에 피랍된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미국에 돌아온 직후 '영웅'으로 영접받긴 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정보함을 이용한 정보수집을 영구 중단해야 했다. 또한 많은 비밀문건과 미국의 암호체계가 북한으로 넘어갔으며, 미국국가안보국(NSA)은 푸에블로호 사건을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보유출 및 치욕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게 됐던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미국은 푸에블로호를 미 해군 함정리스트에서 삭제하지 않고 현역함(現役艦) 자격으로 예우하고 있다. 언젠가는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실제적으로 지난 2000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미 관계가 한때 완화되면서 잠시 푸에블로호 반환협상이 진행되기도 했으나, 이후 북·미 관계 경색과 북한 핵사태 등으로 결국 협상이 좌초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평양에 남아있는 이 같은 치욕의 흔적을 지우고자, 미국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를 중심으로 절치부심(切齒腐心)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감지케 되는 것이다. 2018년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선언문 네 번째 항목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4. 미국과 북한은 이미 확인된 미군 전쟁포로와 전쟁 실종자 유해의 즉각 송환을 포함해 유해 수습을 확인한다.

명예(名譽)를 생명(生命)처럼 존중하는 미국정부에 있어 6.25전쟁 당시 전사자(戰死者)의 유해(遺骸)를 찾아내고자 노심초사하고 있는 처지에, 어찌 치욕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소홀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최근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세 차례에 걸친 북한 방문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물론 북핵 폐기 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명예회복을 위한 제반 작업 또한 막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유추케 되는 것이다.

내년에 우리 한반도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게되는 바, 아직도 이 땅의 남북에 서려있는 가슴아린 흔적(痕跡)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어찌 지울 수 있단 말인가! 아아, 고향을 잃어버린 채 볼모로 끌려와 평양 대동강변에 두둥실 떠있는 푸에블로호. 필자는 평양 대동강 기슭, 거기에 앉아, 통일의 그날을 기원하면서 당시 북한교회 수장인 고 강영섭 목사(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장)로부터 선사 받은 성경전서를 펴들고 시편 137편의 노래를 조용히 읊조렸다.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중략)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중략)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시편 137:1~4, 성경전서, 조선기독교도련맹 중앙위원회, 평양종합인쇄쇄공장, 1990.4.20. 평양)

글·사진 고무송 목사 /한국교회인물연구소장·전 본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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