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뒤엔 교류 이어간 교회 노력 있었다"
독일 헨리 폰 보제 목사 '국제희년재단 심포지엄' 강연서 강조
작성 : 2019년 11월 13일(수) 16:28 가+가-

한국 방문 기간 의주로교회(임광빈 목사 시무)를 방문해 설교하고 있는 헨리 폰 보제 목사.

"무신론 국가인 동독은 교회를 공격하고 끊임없이 여러 방법으로 교회를 약화시키려고 해 독일 개신교회 공동체에서 탈퇴케 했지만 서독의 17개 주 교회와 동독 8개 주 교회 간의 교류는 이미 1949년에 시작돼 분단 40년간 양국의 연결고리가 됐다."

지난 9일 독일 통일 30주년을 맞으면서 지난 10월 31~11월 1일 국제희년재단준비위원회(준비위원장:임은빈)가 주최한 '2019년 국제희년재단 심포지엄'에서 독일 통일 경험을 교회와 디아코니아 관점에서 발제한 전 독일 뷔르템베르크 기독교사회봉사국 공동의장 헨리 폰 보제 목사의 강연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보제 목사는 이날 발제에서 "서독교회는 통일 이전에도 물질적 지원을 통해 동독 교회 재건에 참여했었다"며 "이러한 개교회의 파트너십은 두 국가 사이의 밀폐된 경계를 가로질러 개인적인 관계로 발전될 수 있었다"며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에 분명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보제 목사는 "오늘날 30년 통일 역사에 대해 분석가들은 분명한 평가를 했는데 독일 통일은 두 나라의 파트너적 연합이 아니라 서독에 의한 동독 국가의 경제적 인수였다는 목소리가 있다"며 "동과 서의 사람들이 함께 소속감을 가지는 이른바 내면의 통일은 아직 달성되지 않았고 그들 사이에 많은 제약과 몰이해가 존재한다"고 반성적인 성찰을 했다.

보제 목사는 "통일 당시인 1990년 서독 시민의 평균 소득은 1만 2000유로, 동독은 5500유로이고, 현금 보유액은 5배 이상 차이가 났다"고 지적하고, "오늘날에도 동독의 정규직 직원은 서독의 직원보다 18~21% 더 적게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 후 동독의 노동자들은 서구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어 정체성과 자부심을 잃어버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야만 했고, 서독은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통한 동독 재건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독일의 통일이) 정서적 통일과 내면의 평화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보제 목사는 이외에도 서독과 동독 간 융화되지 못하는 이유로 △서독에서는 나치의 불의에 대한 인식을 유지하기 위한 기념 문화가 발달됐지만 동독은 문화정책으로 이전의 나치들은 모두 서독에 살았다고 가정한 점 △서독은 인구 10분의 1에 해당하는 난민 800만 명을 돌보며 환대 문화를 가졌지만, 동독에는 난민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는 점 등 양측의 상식과 관점의 차이를 꼽았다.

보제 목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공유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독일 통일 후 서독의 교회는 통일 전에는 서신으로, 통일 후에는 공동 프로젝트와 방문을 통해 만남을 가졌는데 이를 통해 교회를 다녔던 가족 해체의 문제, 배신과 불의, 감옥에서 겪었던 고문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연대와 소속감을 갖게 됐다"고 경험을 소개했다.

또한, 그는 통일 후 독일 교회의 사역을 소개하며, "교회들은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효율적인 빈곤퇴치를 위한 정책을 정부에 요구했으며, 외국인 혐오에 대항하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소개하고,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은 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고, 다른 사회와의 공존에 대한 화해는 교회 교육과 동반해 이뤄져야 타협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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