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중심지 보다 더 치열한 만세운동 전개
[ 3.1운동100년현장을가다 ]
작성 : 2019년 10월 25일(금) 15:20 가+가-
양평 상심리교회와 남양주 월산교회

올해 진행된 3.1운동 재현 남양주 시민들의 기념 행사 모습.

경기도 양평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걸출한 인물이 있다. 독립운동가·정치가인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1886년 5월 25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곡에서 출생한 그는 조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김규식을 파리평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했다. 조선대표가 파리강화회의에 가서 독립을 청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만주, 연해주, 일본의 교포와 유학생들, 그리고 국내 지도층에 알려지면서 거국적인 3.1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조선의 독립운동 이끈 영웅, 몽양 여운형

해방 직후인 1946년 7월 조선여론협회에서 주관한 여론조사에서 '해방 후 조선을 이끌어 갈 가장 양심적인 지도자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이 진행된 바 있다. 당시 응답자 중 1위가 여운형(33%)일 정도로 그는 전 국민에게 신망을 받는 인물이었다(2위가 이승만(21%), 3위가 김구(18%)).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 때문에 현재에는 그의 업적이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기는 하나 그는 당시 독립을 도울 국외 세력이 소련밖에 없었기 때문에 공산당의 힘을 민족독립의 동력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이야기이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더욱 흥미롭다.
여운형 선생.
경기도 양평의 여운형 생가.

그는 1907년부터 서울 종로에 있던 승동교회에서 선교사 보조원 생활을 했었고, 같은 해 고향집에는 기독교 광동학교를 세워 청년들을 계몽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그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여운형의 초기 인맥은 거의 기독교계 인물들이었다. 1907년 곽안련(찰스 클라크) 목사의 조사가 된 여운형은 기독교가 썩어빠진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사회적 복음이라고 믿고 열심히 활동했다. 그는 족숙 여병현의 소개로 관동학회에 관계하면서 황성기독교청년회의 이상재나 언더우드 선교사 같은 명사들을 알게 되었는데 이러한 기독교 인맥은 훗날 그가 거사를 도모하는데 중요한 인적 자산이 되었다. 그는 1909년 10월 개성에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합동으로 진행한 백만인구령운동에도 전도사로서 적극 동참했으며, 새벽기도로 시작해 저녁까지 가정집을 방문하고 전도지를 돌렸다고 한다.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도 했지만 조선인 신자들에게 총독부의 권위에 맞서서는 안된다고 가르친 미국 선교사 교수들의 가르침에 반감을 갖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 사회를 변혁시키는 정치인으로의 길로 나섰다.


#4000명 참여한 양평만세운동의 중심지 상심리교회


여운형에게 많은 영향을 준 곽안련 선교사가 1대 당회장으로 있었던 곳이 서울노회 상심리교회(한종환 목사 시무)다. 여운형이 곽안련 선교사의 조사였으니 상심리교회와도 자연스럽게 연관을 지어볼 수 있다. 한종환 목사는 "3.1운동과 관련된 우리 교회의 중심 인물은 여운형, 차상진, 신우균"이라며 "여운형 선생이 상심리교회를 다녔고, 2대 당회장이었던 차상진 목사와도 무척 가까웠다"고 말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차상진 목사는 "스스로 구도의 길에 나서 서울 연동교회 장로 고찬익과 박승봉을 만나 기독교인이 되었고 고향의 상심리교회(上心里敎會) 설립의 주역이 되었다"며 "1906년 인근 문호(汶湖)에 교회를 설립하였고, 묘곡(妙谷)의 여운형(呂運亨)에게 전도하여 묘곡교회와 동광학당을 설립하게 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 목사는 "차상진 목사는 1910년 5월 26일 상심리교회 최초의 장로로 장립되어 교회의 당회가 탄생하게 됐다"며 "1916년 8월부터 두해 동안 상심리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했다고 교회 100년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11년 양주군 퇴계원으로 이주하여 퇴계원교회 장로로 시무하고 이듬해에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16년 졸업했으며, 그 해 경충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1917년에 승동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했다고 되어 있다.
상심리교회.
상심리교회 한종환 목사.

그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서울 안동교회 목사 김백원, 정주교회 장로 조형균, 의주교회 집사 문일평 등과 함께 '조선독립애원서'를 작성하여 3월 12일 조선총독부에 보낸 뒤 만세시위를 벌였다. 옥고를 치른 뒤 그는 1922년 용산교회 담임, 1925년 조선 장감연합 전도국 국장, 1932년 경기노회장, 1934~39년 양평동교회 목사로 시무했다.

위의 두 인물 이외에도 양평 지역에서 3.1운동에 앞장 선 교회 인물은 신우균 선생이다. 신우균은 상심리교회 주일학교 교사였다. 당시 재판 기록은 다음과 같다.

"피고 신우균, 여운긍, 여광현은 4월 3일 양평군 고읍면 내에서 이 운동을 위하여 모인 동군 강상, 강하, 양서, 고읍 4면의 주민 약 4000명 군중 속에 뛰어들어 태극기를 휘날리며 함께 조선 독립만세를 절규하였으며, 또한 그 군중 속에서 양근읍 내로 가서 시위운동을 할 것인가 아닌가를 제의하고 고읍면 용암리와 용암리 사이의 작은 언덕까지 행진함으로서 피고들은 모두 그 지방의 치안을 방해한 것이다."

1919년 10월 15일 경성지방법원은 신우균과 여운긍, 여광현에게 보안법 위반의 죄를 확정, 태형 90대를 맞고 풀려났다.

한종환 목사는 "올해 3.1운동 100주년 기념비 세울 때 신우균 선생의 후손들이 오셔서 참석해 교인들이 함께 감격했었다"며 "올해 우리 교회를 포함해 양평시찰 교회들이 모여 3.1절 특별예배를 국수교회에서 드리며, 교회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겼다"고 말했다.

일제 치하에서 많은 탄압을 받고, 6.25 전쟁 때는 양평 지역의 전투가 치열해서 이전 건물이 대포를 맞아 모두 소실 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깊은 상흔을 지닌 상심리교회이지만 남한강의 자연과 어울어지는 교회 전경은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 한 곳으로 꼽히고 있다.


#가장 심한 박해 속에서도 운동 전개한 월산교회


경기도 남양주 3.1운동에 참여한 예장 소속의 교회로는 서울동북노회 월산교회(김풍호 목사 시무)가 있다. 월산교회는 남양주시 3.1운동의 중심지로 1989년부터 지난 30년간 남양주문화원과 함께 3.1운동 기념식을 교회에서 개최하고 있다. 1999년부터는 1919년 만세운동을 재현하기 위해 전날 마을주민들이 모여 횃불을 들고 모란고개를 넘어 마석주재소까지 행진한다.

월산교회의 만세운동 주역은 김필규 선생이다. 월산교회는 1907년 김필규를 교사로 초빙해 한학을 가르치는 배인학당을 세웠다. 1919년 3월 16일 선교사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아 국내외 정세에 밝은 교회 지도자 이인하, 이택하, 김우동, 김필규 등이 만세소식을 듣고 마을 유지들과 모의하여 봉기할 시기와 방법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틀 후 밀고로 이재하 이승보 이택하 씨가 일경에 검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월산리 답내리 주민 200여 명이 횃불을 들고 모란고개를 넘어 마석주재소 앞에 가 검거인사의 석방과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경의 발포로 5명이 그 자리에서 순국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배인학당의 교사였고, 교회의 대표였던 김필규 선생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필규 선생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했다. 독립운동사에 따르면, 남양주에서 있었던 만세운동과 이에 대한 일경의 잔혹한 진압은 서울근교 한강 이북에서 일어난 가장 처참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다.
3.1운동 기념비 앞에 선 월산교회 담임 김풍호 목사.
교회 내부에 전시된 3.1운동 관련 자료들

김풍호 목사는 교회 건너편에 있는 마석초등학교를 졸업한 이곳 토박이다. 김 목사는 "어린 시절 집 근처에 3.1절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월산리, 답내리 주민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은 있고, 월산교회의 이름이 언급 없어 당시 교회가 참여했던 것은 전혀 알 수 없었다"며 "1988년 교회 담임으로 부임되어 와서 보니까 교회가 그 당시 조직은 교회밖에 없었고, 교회 어른들로부터 교회가 중심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남양주 전체 독립운동사를 도서관에 가서 조사해 본 결과, 만세운동에 교회가 중심이 됐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월산교회가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실들을 복원하고 알리면서 1989년부터 남양주문화원과 함께 3.1운동 기념식을 교회에서 드리기 시작했다"며 "나라를 사랑해 독립운동을 한 교회라는 자부심이 교인들 안에 자리잡고 있고, 지역 주민들도 월산교회는 독립운동을 했던 교회로 알고 있어 모두들 친숙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 목사는 "올해 교회 표어가 '함께 하신 100년, 인도하실 1000년'"이라며 "1899년 시작된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100년 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나라사랑을 실천한 것처럼 미래에도 더 큰 복을 주셔서 복음과 나라사랑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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