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대처하는 커쇼를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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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19년 10월 22일(화) 17:15 가+가-

/커쇼 인스타그램

# 미디어는 결코 이성적이지 않다

지난 주 <미디어 앞에 선 청년 커쇼>라는 제목으로 '미디어를 대하는 커쇼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스포츠라는 것이 사실 삶에 그리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마치 스포츠가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반응하곤 한다. 2주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커쇼에 대한 팬들의 불만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커쇼에 대한 팬들의 울화통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긴, 그래야 선수들도 숨 쉴 구멍이란 게 있을 거다. 팬들이 지금껏 벌어졌던 모든 경기의 순간들을 눈에 불을 켜고 반응한다면,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그러나 미디어는 그렇지 않다. 미디어는 팬들의 반응을 결코 객관적으로 전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팬들의 반응을 과장해서 전하는 습성이 있다. 여전히 미디어는 "큰 경기에 약한 커쇼" "믿음에 부응하지 못한 커쇼"라는 뉘앙스의 제목으로 지속적으로 커쇼를 흔들고 있다. 조금 잠잠해지는 것 같은 타이밍에 툭툭 커쇼를 흔드는 기사들은 내년 봄까지도, 어쩌면 평생에 걸쳐 커쇼를 흔들어놓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2019년 가을과 겨울은 커쇼의 인생 중 가장 혹독한 계절이 될 듯하다.

반드시 미국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스포츠 저널리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체는 '일간 스포츠'이다. 그 후로 '스포츠 서울' '스포츠 조선' 등이 생겨나며 8~90년대에는 스포츠 신문 전성시대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스포츠 기사는 단순히 스포츠 전문지를 통해서만 펼쳐지지 않는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는 '스포츠'라는 영역을 꾸준히 다룬다. 서두에 밝혔듯, 스포츠는 우리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휘발성이 강하다. 독자들의 마음에 어떤 식으로든 강렬한 감정의 흔적을 남겨버리곤 한다. 커쇼와 유사한 상황이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벌어졌어도, 미디어의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이재진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미디어 윤리>를 "미디어 윤리는 한마디로 언론으로서 외적 독립의 근거이고 내적 생존의 결정적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00% 옳은 소리다. 그러나 실제 미디어 현장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마치 미디어 윤리를 지키는 순간,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진다. 커쇼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시기를 견디고 있을까. 언론의 융단 폭격이 끝나고도 잔잔한 폭격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 "기도하고 있는 커쇼를 상상해 보았다"

올스타에 세 번이나 선정되었던 전직 메이저리그 선수 '제이슨 캔달'이 기자 '리 저지'와 공저한 <이것이 진짜 메이저리그다>에는 재미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선수는 굳이 언론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언론인은 야구 경기 중에 진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경기가 끝나면 기사에 쓸 만한 코멘트를 따려고 5분 동안 취재할 뿐이다. 프로 운동선수는 항상 경계 태세를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열려면 믿어도 좋다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한다. 칼럼니스트나 수많은 라디오 진행자들? 그들은 구장에 거의 나타나지도 않고, 야구나 자신이 취재하는 팀에 대해서 뭣도 모른다."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쓰는 기사를 읽고, 그들이 떠드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모두가 부정적인 말을 듣길 원한다. 칼럼니스트나 스포츠 토크쇼 진행자가 하는 일이란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재수 없게 구는 것뿐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의 75퍼센트는 헛소리다. 최고의 기자들은 구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안다. 그들은 매일 팀과 함께 한다. 길 위든, 홈구장이든, 스프링트레이닝이든 어디서나 말이다. 그런 기자들과는 친분이 생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기자들은 선수들의 신뢰를 얻는다."

기도하고 있는 커쇼를 상상해 보았다. 커쇼라면, 지금의 상황을 하나님 안에서 소화해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는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편 40편 1~2절)

자신의 커리어 중 가장 깊은 수렁에 빠진 커쇼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지 기대(?)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는 커쇼니까.

소재웅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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