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버지에 그 아들'그리고 '형도교회'
10.형도교회 이동목 목사와 자녀들을 찾아서(下)
작성 : 2019년 10월 16일(수) 20:17 가+가-

그 시절의 형도교회. 이동목(50세), 이황순(45세), 그리고 형도분교 재학중이던 3남 병억(12세), 막내 병민(10세).

이동목 목사(가운데)가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훼파된 '형도교회' 앞에 서있다.
아들 병민(10살)이는 친구가 없어서 손바닥만한 교회 앞마당에서 혼자 땅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오락이다.
그런 속담이 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이는 이동목 목사(84)와 그의 아들 이병승 목사(50)를 두고 이르는 말이렸다. 그날도 이병승은 막 구워낸 뜨끈뜨끈한 빵을 빵기계에서 건져내고 있었다.

- 고 목사님, 한번 잡숴보세요. 빵 맛이 기가 막힙니다. 저는 말은 잘 못하고 이렇게 빵 굽는 일은 제법 잘하는 목사입니다. 말 잘하고 싶어 노력도 해보았지만, 제가 갈 길이 아니었습니다. 빵, 쿠키, 음식, 커피, 목공, 농사까지 … 만들고 일하는 것, 그게 저의 사명입니다. '은샘교회'와 '은샘공동체'를 설립한지 2년 반이 지났고, 현재 자폐, 정신지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6명의 장애우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통해 보고 배운 것이 헌신과 섬김 아니겠습니까.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웬걸, 이병승은 말을 잘 못하는 것 아니라, 청산유수다. 다만 말을 앞세우기보다 삶으로 실천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는 얘기다. 이병승 목사, 누가 그를 근엄한 사제(司祭)라 하겠는가. 그는 천상 동네 빵 굽는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다. 그런 아들을 잠잠히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 이동목 목사의 표정이 착잡하다.

- 본래 '5남매 모두 주의 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도 못난 종이었기에 감히 얘길 꺼낼 수가 없었죠. 아마 종의 길이 힘들었기 때문에 선뜻 권하고 싶지 않았던 게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둘째 아들이 목사안수를 받더니 사회복지사, 바리스타 자격증 같은 걸 따고는 저렇게 특수목회를 잘 감당하고 있네요. 기특하고, 고맙고, 안쓰러운 심정이랍니다. 우리 내외는 오로지 주님께 매달려 기도할 뿐입니다.

그날, 2019년 8월 27일, 필자는 대전시 유성구 신성로에 위치한 '은샘교회' 부설 '은샘공동체'를 찾았다. 이병승 목사의 사역현장 취재와 함께 또 다른 은밀한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이동목 목사의 숙원에 관련된 것으로, 오래 전부터 필자는 두 아들과 약조해 놓았던 것이었다. 그 은밀한 계획이란 게 무얼까?

#'형도교회' 흔적을 찾아서

1987년 6월, 정부는 서해안의 광활한 간석지를 개발, 대규모 국토 확장을 꾀하기 위해 시화지구개발사업이라고 명명된 대규모 프로젝트를 착공한다.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화성군에 걸쳐 있는 넓은 간석지를 집중 개발, 수도권 인구를 분산하고 공업용지를 확보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렇게 조성된 시화방조제는 군산의 새만금방조제에 이어 국내 두번째로 긴 방조제이기도 하다. 이같은 서해안 개발계획에 따라 지극히 작은 섬 형도(衡島)가 연육(連陸) 되면서 어민들은 떠나게 됐고, '형도교회' 또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형도(28가구)를 중심으로 이웃 우움도(20가구), 국화도(15가구), 어도(30가구) 등 땅끝 섬마을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꿈을 접어야 했던 이동목 목사와 그의 가족들에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며, 결코 잊을 수 없는 삶의 터전 아니겠는가. 더욱이나 큰 딸을 그 바다에 묻어야 했지 않았던가. 필자 또한 '빛과소금' 창간호(1985년 4월)에 최초로 기고했던 취재현장이다. 이래저래 '흔적'이라도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 그것은 이동목 목사는 물론 우리들 모두의 간절한 소원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형도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우리'라 함은 오늘의 주인공 이동목 목사와 뒷좌석에 앉아 아버지를 부축하는 막내 아들 바리톤 이병민, 운전대를 잡고 있는 둘째 아들 이병승 목사, 조수석에 앉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 필자, 그렇게 네 사람이다. 아침 나절엔 잔뜩 흐렸던 하늘이 오후 들어 쨍하고 내리쬐는 햇볕이 눈부시다. 오 맑은 햇빛! 한 시간 남짓, 우리가 도착한 곳, 거기가 '사강'이라 했다. 1985년 이른 봄, 그러니까 필자가 처음 형도를 찾았던 그날, 이동목이 마중을 나왔던 곳 아닌가. 한산했던 거리가 이젠 도회지로 변했다. '빛과소금'에 실린 그날의 리포트를 펼쳐본다.

- 그가 일러준 대로 수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사강행 완행버스를 탔다. 100% 비포장 도로를 털썩거리며 달리기를 한시간 남짓, 사강 하차. 약속대로 그곳에서 이동목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헬멧에 흙투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왔다.

아, 꿈 속에 그리던 마음의 고향 우리들의 형도. 그리고 '형도교회' 흔적이여! '빛과소금'에 실린 이남수 사진부장의 영감 넘치는 저 흑백사진을 보라. 언덕 위의 하얀 집, 그 집이 '형도교회'다. 그런데 이젠 온통 숲 속에 가려져, 어디쯤 교회가 있을까?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

돌짝밭 형도, 주민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섬을 주름잡듯 샅샅이 뒤져가며 펄펄 뛰어다녔던 이동목, 그가 이젠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허위단심 수풀 속 오솔길을 더듬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 고 목사님, 그땐 이 섬에 집들도 꽉꽉 들어찼고, 사람들도 득시글거렸는데, 이젠 집들도 텅텅 비었고, 사람도 눈에 띠질 않네요. 저만큼 거기 이장댁이 있었고, 바로 그 옆집에 박길수 집사님이 살았었는데, 모두 어디로 떠났을까요? 우리 '형도교회'는 어디쯤일까요? 산꼭대기에 있었으니까, 아직도 멀었죠? 올라가는 길조차 흔적을 찾을 수가 없네요.

#'순례자의 노래'

1985년 4월, 이동목은 세가지 소원을 얘기했다. 첫째 형도와 이웃 섬들의 복음화, 둘째 섬마을 어린이 선교유아원 설립, 셋째 5남매의 자녀교육이었다. 거기에 필자가 보너스를 보탰다. '만년전도사' 이동목의 목사안수! 밀착취재 첫날 기사를 옮겨본다.

-이동목의 하루는 새벽 4시 반부터 시작된다. 그는 매일 새벽, 섬을 깨운다. 지금은 차임벨이 있긴 하지만, 그는 종을 더 아낀다. 종소리는 새벽을 가른다. 5시 새벽기도회. 그날은 새벽부터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진기자와 함께 예배당에 들어서니, 텅 비어 있었다. 전기가 없는 섬인지라, 이동목은 촛불 두 자루를 켜놓고 혼자서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텅빈 교회. 그런데도 이동목은 "즐겁고 평안하다"고 아내와 함께 목청껏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부부의 합창에 반주라도 하려는 듯, 양철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기자의 귀에, 그 빗방울이 자꾸만 눈물방울처럼 들렸던 것은 환청(幻聽)이었을까…

이동목이 생명처럼 붙들고 눈물 젖은 찬송가를 목청껏 불렀던 양철지붕 형도교회. 마루바닥에 20여 명 앉을까 말까 하는 작은 단층건물이었지만, 축복이 샘솟듯 솟아났던 은총의 제단이요 기도의 산실이었다.

- 저희 가족들은 물론 전세계 후원자들의 사랑이 쏟아 부어졌던 제단이 저렇게 무너지다니…

이동목 목사는 말을 잇지 못한다. 눈을 감는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어찌 훼파(毁破)된 제단을 바라볼 수 있으랴. 5남매 중 유일한 형도산(衡島産)으로 마산초등학교 형도분교출신 막내아들 이병민. 아빠를 따라 작디작은 선교선을 타고 이웃 섬마을을 순례할 때, 거친 파도가 무서워 아빠하고 '순례자의 노래'를 목청껏 불러 제켰던 게 발성연습의 기회(機會)와 장(場)이 됐고, 이태리에 유학, 세계적 바리톤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던 우리들의 호프! 그가 어찌 형도를 잊을 수 있으리오.

- 제가 낙서하며 놀던 교회 앞마당이 저렇게 숲으로 변했어요. 그땐 운동장처럼 넓었었는데…

손바닥만한 교회 앞마당이 어찌 운동장처럼 넓었을꼬? 그렇게 고향은 크게만 추억되는 것이려니! 기획 '이 섬에서 죽게하소서' 말미엔 '형도교회' 앞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소년의 모습이 찍혀있다. 사진작가 이남수의 명작품이다. 필자는 이런 사진설명을 달았다.

- 이동목의 막내아들 병민(10살)이는 친구가 없어서 손바닥만한 교회 앞마당에서 혼자 땅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유일한 오락이다.

아버지 이동목 목사를 이어 은샘교회를 개척하고 부설 은샘공동체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둘째 아들 이병승 목사는 형도교회 폐허 여기저기 흩어진 유품들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챙긴다.

- 소중한 아버지의 흔적들을 모아서 '형도교회 이동목 목사 가족박물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가족박물관에 필자는 가보(家寶)처럼 간직하고 있는, 이동목 현장리포트 '이 섬에서 죽게하소서'가 수록된 '빛과소금' 창간호를 기증하리라. 우리는 바리톤 이병민 선창으로 이동목 가정의 주제가 '순례자의 노래'를 불렀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새웠네 /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주 복음 전하리 / 아멘!

글·사진 고무송목사 / 한국교회인물연구소장·전 본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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