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앞에 선 청년 커쇼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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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19년 10월 12일(토) 09:00 가+가-

/커쇼 인스타그램

올시즌 개막 당시 방문했던 LA 다저스 구장은 우승을 향한 기대로 가득했다. 지금, LA 다저스팬들은 실망감을 추스르느라 바쁘다. 그 중심에, 커쇼가 있다.
<b>#감정적인 이야기 대신 '감정' 표현</b>

2019년 10월 10일(한국시간 기준). 이 날은 커쇼에게 두고두고 기억될 악몽 같은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1년 정도는, 그리고 길게는 평생에 걸쳐서 말이다.

커쇼는 다 이긴 경기를 저 멀리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굳이 축구로 비유하자면, 2:0으로 앞서다가 후반 종료 5분전에 등장한 골키퍼가 어이없는 실수로 두 골을 먹어 동점을 허용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 결국 커쇼가 속한 팀 LA다저스는 패배했고, 그걸로 우승을 목표로 힘차게 전진하던 LA 다저스 선수들은 짐을 싸야 했다. 커쇼는 괴로운 표정으로 덕아웃에 앉아 있었고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터뷰 중 일부다.

"제 역할은 단 하나 아웃 3개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를 잡아냈지만 나머지 둘은 잡지 못했죠. 홈런을 허용하면서 팀의 승리를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참담한 기분입니다. 변명할 도리는 없고요. 제 위치에 공을 던지지 못하면서 두 차례나 홈런을 허용해버렸죠. 하지만 고개를 떨구진 않겠습니다. 여기에서 계속 싸워나가고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피하진 않을 겁니다. 계속해서 노력해나갈 거고요. 사람들이 제 포스트시즌에 말하던 모든 건 이제 진실이 됐습니다. 저도 이해할 수 있는 바이고요. 지금으로서는 제가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 정말 참담한 심정입니다. 정말 그렇네요. 네, 그래도 고개를 숙이진 않겠습니다. 내년에도 여기서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할 테고 매년 그 노력을 이어갈 겁니다."

인터뷰 내용만 보면 커쇼가 마치 다시 힘을 내서 힘차게 전진할 것 같지만, 기자들에게 이야기하는 커쇼의 표정은 매우 괴로워 보였다. 큰 실수를 하고도 당당한 선수를 보면 얄밉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커쇼는 반대였다. 실패 그 이상의 거대한 실망에 휩싸인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참담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틈이 보이면 물어뜯기 위해 사정없이 달려드는 기자들 역시 커쇼의 가라앉은 기운 탓에 꽤나 차분해 보였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정도를 넘어 완전히 고꾸라져 있는 선수를 향해 칼을 던질 기자는, 적어도 그 자리에는 없어 보였다.

커쇼는 정규시즌 때는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주다가도, 진검승부가 시작되는 포스트시즌(쉽게 말해 강팀들끼리만 모여 우승팀을 가리는 시즌)만 되면 매우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곤 했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주는 기량의 격차가 너무 크다보니, 이미 이룰 것은 다 이룬 것처럼 보이는 커쇼에게 포스트시즌은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다. 이번 시즌만큼은 극복하려고 달려든 커쇼에게 주어진 성적표는 F학점, 그리고 우승후보 LA 다저스의 탈락이었다.

괴로워하는 커쇼를 보며 느낀 감정은 사람마다 달랐을 거다. 커쇼를 아끼는 팬으로선 그의 괴로움이 그대로 전달되었을 거고, 커쇼를 싫어하는 팬으로선 다시 한 번 부진한 그에게 비난의 돌을 던졌을 거다. 그러나, 커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인상적이었던 건 기자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덤덤히 털어놓았다. 정말 턱끝까지 차오르는 듯한 괴로움과 실망감이 느껴졌지만, 그는 그마저 누르고 누르며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그의 이야기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만, 결코 '감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야구 전문기자 레너드 코페트가 쓴 <아구란 무엇인가> 중 '챕터11 미디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선수들은 야구 경기를 한다. 구단들과 리그 사무국은 게임이 열릴 수 있도록 제반 시설과 준비를 갖춘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게임을 하는가? 목적은 단 하나, 바로 돈을 벌려는 것이고, 그리고 돈을 벌려면 야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게임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예고하고 그 결과는 알려 주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매스 미디어는 선수와 구단 못지않게 프로야구가 존립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된다."

레너드 코페트의 이야기는 프로스포츠의 속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미디어는 선수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경기를 알리고 활용하여 돈을 버는 무형의 실체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를 실질적으로 드러내는 기자들은 선수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커쇼의 부진은 분명 좋은 먹잇감이었을 거다. 그들 앞에 선 커쇼의 마음이 편했을 리 없다. 그러나, 커쇼는 그들 앞에서 아주 성숙한 인터뷰이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커쇼 부부가 공동으로 쓴 <커쇼의 어라이즈>에는 커다란 패배에 대한 커쇼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안 주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만약 내 앞에 감당할 수 있는 일들만 닥친다면, 그냥 내 힘으로 그 시련을 극복하면 된다. 그럴 경우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필요가 없어진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커쇼,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끌어안고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서있을 거다. 그는 이 시련을 거쳐 내년에 어떻게 변해있을까.

소재웅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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