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작성 : 2019년 10월 14일(월) 00:00 가+가-
필자가 총회 기획국에서 일할 때의 일화이다. 몇 회기 교단 총회였는지는 분명히 기억하지 못한다. 총회 기간 중, 해외 협력 교회 내빈들과 함께 드리는 총회 에큐메니칼 예배의 설교를 쿠바개혁교회 총회장이었던 도라 아르세 목사에게 부탁했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도라 목사는 쿠바개혁교회의 첫 여성 총회장이었다. 예배 시간 약 30분 전 총회 장소에 도착해 예배 준비를 하는데, 도라 목사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잠시 홀로 묵상할 공간을 준비해 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부탁해 왔다. 부랴부랴 총회가 열리던 교회의 부교역자실을 빌려 도라 목사가 예배를 준비하도록 했다. 예배가 끝나고 난 후,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도라 목사가 말했다. "오늘 저녁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많은 남성들이 한 공간에 똑같은 옷을 입고 모인 회의는 처음 참석해 보는지라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내게는 너무나 익숙했던,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교단 총회의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는 너무나 낯설고, 생소한, 위압적이기도 한 광경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 104회 총회도 10여 년 전 총회의 상황에서 그리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1500여 명의 총대 중 26명의 여성 총대 참석이라는 수치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시몬 집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식사를 하는 자리에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 왔다. 남성의 활동 공간과 여성의 활동 공간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던 시대에, 남성들만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 당돌하게 한 여인이 들어와 손에 들고 있던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붓는다.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연회에 누구의 초대도 받지 못한 '한 여인'으로, 이름도 기억되지 못한 여인이었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자신의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귀한 나드 향유 옥합을 아낌없이 깨뜨려 예수님의 몸에 부었다. 함께 있었던 제자들은 이 여인의 온전한 드림의 가치를 세상의 가치로 효용성을 따지며, 여인의 행위를 비난하고 꾸짖었다. 여인에게 허락된 집 제일 안 쪽의 공간, 익숙하고, 가장 편안한 공간을 박차고, 여인으로는 넘어서는 안 될 경계를 넘어 예수님 앞에 당당히 걸어 나와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바친 여인에게 시대는 가혹하게도 '죄인이다, 창녀다'라는 말로 정죄하고 비난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의 거룩한 목적을 읽으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3~9)"라는 말씀으로 복을 빌어 주셨다. 일반적인 통념과 관례를 깨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도전적 의식, 용기, 헌신의 모델을 '옥합'을 깬 이 여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집 안의 제일 안쪽, 안채로 어린 아들이 가져다 준 전도지를 통해 복음을 접하고, 동네 여성들을 모아 부인회를 조직하고, 속곳 속 엽전 한 닢을 모아서 전도인을 세우고, 권서인, 선교사를 파송한 우리 교회 여성들에게서 또한 '옥합'을 깬 여인의 용기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이제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을 고하자. 이제는 우리 '교회' 안에서 우리가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옥합'을 깰 때가 됐다. 굳이 '성평등(Gender Equality)', '여성역량강화'의 필요성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객관적인 관점으로 우리 교회를 들여다 보고, 솔직해 보자. 전통적인 통념과 관례를 깨고,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교회의 근본적 변화를 향한 외침을 공허하게 울리는 꽹가리 소리로 치부하지 않는, 변화하는 교회의 모습을 한번 더 기대해 본다.

문정은 목사/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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