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에 생긴 피부병(레 1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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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19년 10월 18일(금) 00:00 가+가-
레위기 13장은 살갗에 생긴 피부병 환자와 옷과 천에 생긴 곰팡이 문제를 다룬다. 심한 피부병에 걸린 환자와 옷에 생긴 곰팡이를 부정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것들이 사람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악성 피부병에는 종기, 부스럼, 반점, 뾰루지, 얼룩, 감염된 화상 등이 있는데, 개역개정은 이것들을 총칭하여 나병이라고 부른다. 나병이 좋은 번역은 아닌데, 본문에 나오는 피부병은 한센병으로 불리는 나병과 증상이 다르기 때문이고 한센병의 발병 역사는 레위기의 시대 이후이기 때문이다. 개역개정은 불에 덴 자리와 수염에 난 환부와 옷과 천에 생긴 곰팡이를 모두 나병으로 번역하는데, 새번역처럼 사람에게 생기는 병은 심한 피부병으로, 옷이나 천에 생기는 것은 곰팡이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심한 피부병 증상이 있는 사람은 제사장에게 데려가야 한다. 제사장이 피부병 환자들을 만나지만,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약성경은 유일한 치료자는 하나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제사장은 단지 전염의 성질과 상태를 판단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머물러 있는 동안 진영의 건강을 책임지는 역할을 감당했다. 그래서 제사장이 환처를 관찰하고 사람이 악성 피부병에 걸렸다고 판단하면, 환자를 부정하다고 선언해야 했다. 이것은 환자를 보호하고 진영을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환자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는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부정한 자신이 죽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정결법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사 6). 심한 피부병 환자는 진영 밖에서 살아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킬 위험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진영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지만 부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제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전염될 위험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했는데, 이것은 위생적인 관심과 함께 하나님 백성의 정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공동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제사장은 3주 동안 피부병 환자를 관찰한다. 살갗에 생긴 얼룩이 희기만 하고 우묵하게 들어가지 않고 털이 하얗게 되지 않았으면 일주일 동안 지켜본다. 일주일 동안 상태가 그대로이면 다시 일주일 동안 환자를 백성으로부터 격리시킨다. 다시 일주일 뒤에 살펴보아 병이 사라지면 제사장은 정하다고 선언하고, 다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오게 한다. 단순한 뾰루지로 판명될 경우에는 옷을 빨아 입으면 된다. 이것은 곰팡이도 마찬가지이다. 옷이나 천에 곰팡이가 생기면 일주일 동안 관찰한다. 곰팡이가 퍼지면 불태우고, 그렇지 않으면 옷을 빨면 된다. 곰팡이 자국이 남아 있으면, 그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 레위기는 옷(13:47~59)과 집에 생긴 곰팡이(14:33~57)도 부정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생명을 옷과 집이 둘러쌓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결법은 사람의 식생활과 의생활과 주생활에서의 정결함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

심한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께 벌을 받은 사람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부터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셨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나병이다. 마가복음 1장 40~45절에서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고쳐달라고 애원하자,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신다. 예수님은 구약의 정결법을 존중하시고, 나병환자에게 자신이 나은 모습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신다. 공적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절차이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셨지만, 결코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도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신 다음에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시러 올라가신다(막 14:3~9).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마지막 주간 수요일에 익명의 여자가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신 곳이 바로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죽음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다. 사회의 가장 외진 변두리에서 신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는데,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과 상처 입은 사람들을 부르고 고치러 오셨기 때문이다(막 2:17).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늘 죽음에 노출되어 있고, 몸과 마음의 연약함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고백한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야 주님께 고쳐달라고 기도할 수 있다. 또한 참된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람의 영혼뿐 아니라, 몸의 건강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님의 길을 따라간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부정함을 깨끗이 씻어주셨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당시 정통 유대교인들에게 비난받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부정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은 구약의 정결법을 어기는 범법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늘 율법의 본래 뜻과 목적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셨다. 율법은 사람을 얽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제정하신 복음이다.

김선종 교수/호남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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