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
작성 : 2019년 10월 11일(금) 11:55 가+가-
조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목사는 130년 전에 호주 첫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한국 이름은 덕배시(德倍時)였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배가시키는 은총의 순간'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1856년 8월 22일에 태어나서 1890년 4월 5일에 별세했으니 33년 7개월 남짓 살았고, 한국에 선교사로 왔으나 불과 6개월 만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그의 삶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개항기 부산 지역에서 사망한 첫 호주장로교 선교사'. 데이비스 목사는 9남 3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플리머스형제단 출신의 독실한 신앙 가정이었다. 데이비스는 엄격한 신앙훈련을 받았고, 네 명의 형제자매가 선교사로 헌신했다. 데이비스 목사와 누나 메리(Mary)가 한국에서, 동생 타보르(Tabor)와 사라(Sarah)가 인도에서 선교를 했다. 동생 존(John)은 장로교회 목사가 됐다.

데이비스의 여동생 사라는 1875년에 인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호주 최초의 여성 인도 선교사였다. 데이비스 목사도 1876년에 호주 씨엠에스(Church Missionary Society) 선교사로 자원해서 인도로 갔다. 사라가 인도에 선교사가 부족하다고 호소한 것이다.

데이비스는 건강이 악화되어 21개월 만에 인도에서 돌아온 뒤 멜번대학교에서 헬라어와 라틴어를 공부했다. 2학년을 마칠 때 고전어 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지학, 화학, 식물학, 비교해부학, 귀납논리학 등을 공부하고 1881년 3월에 졸업했다.

데이비스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코필드 그래머 스쿨을 설립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겸한 학교였다. 한편으로는 공부를 계속해서 1883년 멜번대학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888년까지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학교발전의 기반을 닦았다. 개인적인 명성도 얻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됐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항상 인도로 돌아가기를 고대했다. 1886년 어머니 마가렛(Margaret)이 세상을 떠나고 동생들이 성장하자 학교를 정리했다. 성공회 목사 바넷(E. J. Barnett)에게 인계하고 1888년 4월 다시 인도 선교사를 지원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데이비스는 성 메리교회의 메카트니 목사가 발행하는 '국내 국외 선교'에서 한국선교가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호소한 글을 읽고 선교지를 바꾸었다. 중국 푸조(福州)의 월푸(Archdeacon John R. Wolfe) 선교사가 부산을 방문한 뒤에 보낸 편지였다.

데이비스는 한국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장로교회 목사가 됐다. 투락장로교회 존 어윙(John F. Ewing) 목사의 후원으로 영국 에딘버러에서 6개월 간 공부하고 돌아와서 1889년 8월 5일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데이비스는 빅토리아장로교회 청년연합회(YMFU) 후원으로 한국으로 향했다. YMFU는 26개 교회 청년 300명의 회원을 갖고 있었다.

데이비스는 1889년 8월 21일에 멜번을 떠나서 10월 2일에 부산에 도착한 뒤 서울로 갔다.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장로회선교공의회' 서기의 일도 보았다. 데이비스는 선교지를 찾기 위해서 답사여행을 떠났다. 부산에 거주하던 제임스 게일(J.S. Gale)에게 편지를 보내고 1890년 3월 14일에 한국어 선생과 함께 도보로 출발했다.

데이비스는 3주간 걸어서 전도여행을 하고 4월 4일에 부산에 도착했지만, 불행하게도 도중에 천연두에 감염됐다. 게일 선교사와 일본인 의사가 그를 돌보았지만 이튿날인 4월 5일 부활주일 전날에 사망하고 말았다.

데이비스 목사가 사망하자 빅토리아장로교회는 한국선교를 계속할 것인지를 검토했다. 선교를 포기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어서 130명의 호주연합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을 찾아 왔다. 이들은 부산 울산 경남 일대에 교회를 세웠다. 병원 학교 고아원을 운영하고, 한센시 환자들을 위해서 상애원을 만들었다.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데이비스 목사도 한국교회가 이처럼 성장하리라고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세운 코필드 그래머 스쿨도 중국 난징을 포함해서 5개의 캠퍼스에서 700여 명의 교직원과 550명의 스포츠 코치가 3300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명문사립학교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척박한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한·호 선교 130주년을 맞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변창배 목사 / 총회 사무총장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