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쯤이야? 이것까지도!
2019년 10월 19일 드리는 가정예배
작성 : 2019년 10월 19일(토) 00:10 가+가-

이정재 목사

▶본문 : 창세기 39장 7~10절

▶찬송 : 342장



하나님은 그의 백성된 우리들에게 거룩할 것을 명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거룩하다는 것은 죄로부터 구별된 정결한 삶을 요구한다. 성도는 하나님으로 인해 날마다 거룩한 자의 삶을 배우고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로 세우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을 볼 수 있다. 신임을 얻어 보디발의 집의 가정 총무가 됐지만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 서야만 했다. 요셉과의 잠자리를 구하며 요셉을 향해 구애의 손길을 뻗치는 여인을 뿌리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일지도 모른다. 보디발의 아내를 품에 안는 순간 세상적으로는 그에게 상당한 것들이 주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삶을 적극적으로 찾고 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셉은 철저하게 자신을 지키고 세워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셉이 여인의 유혹 앞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요셉이 말한 그의 고백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9절)" 적어도 요셉은 이 고백을 통해 두 가지의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는 지금 자기에게 다가오는 유혹을 큰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며, 둘째는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수하고 실패하며 넘어지는 이유는 자기에게 주어진 죄를 작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늘 이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쉽게 넘어간다. 이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쉽게 수용하고 동화된다. 어쩌면 첫 사람 아담과 하와도 뱀의 유혹 앞에서 그렇게 무너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작은 것이라고 쉽게 여기면 죄는 언제나 그 틈으로 우리에게 침투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죄에 대하여 민감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쯤이야" 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것까지도!"라고 스스로를 지키며 행할 결단이 필요하다.

또한 요셉은 자신의 모든 삶을 늘 하나님 앞에서 세워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내 앞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으면 쉽게 자신을 점검한다. 그러나 때때로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자신을 지키려 하기 보다는 타협하고 세운 규칙을 허물려고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요셉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세우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힘쓴 자임을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다. 믿음은 그런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지키고 세워가는 것이다.

죄악의 물결이 점점 더 거세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기준 속에서 살아야 할까? 오늘 요셉이 그의 삶을 통해 우리를 권면하고 있다. 우리는 작은 것 하나에도 늘 민감한 자가 되어야 한다. 죄악의 요소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끊고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며 지켜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신을 지키고 다스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자가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죄악이 깊어져 가는 이 시대 속에서 작은 것 하나까지도 지켜가며,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온전한 삶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정재 목사/신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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