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들과 함께하는 추석축제를 마치고
작성 : 2019년 09월 23일(월) 00:00 가+가-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 이주민 선교를 위한 교회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말씀은 주로 총동원전도주일을 앞두고 인용했던 말씀이었다. 그러나 이주민 교회 사역을 하면서 위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조금씩 바뀌어 갔다. '과연 누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자인가' '누가 천국잔치에 초대받을까'하는 물음 앞에 이 시대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들 그리고 저는 자들과 함께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주민들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매년 추석명절이 되면 '이주민들과 함께하는 추석축제'라는 이름으로 큰 잔치(?)를 열고 있다. 큰 잔치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교회 일 년 헌금과 맞먹을 만큼 큰 재정이 들어가는 행사이니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세우고 난 이듬해부터 올해까지 1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 잔치를 해 오고 있다.

사실 축제를 마친 후에는 준비과정의 어려움과 땀 흘리며 고생하는 스텝들과 봉사자들을 보며'아, 내년부터는 하지 말자'라는 말을 하곤 했지만 또 추석이 다가오면 축제를 기다리고 있는 이주민들의 얼굴들이 떠올라 또 계획을 세우고 잔치를 준비하게 된다. 약 10개 국의 아시아, 아프리카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제 한마당을 펼치니 장소선정, 프로그램 기획, 음식 메뉴, 상품·경품 준비, 후원 모금 등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각국 대표자 모임을 가져야 하고, 각 나라별 모임도 따로 가져야 하는 수고도 뒤따르게 된다.

매년 추석 당일에 했는데 올해에는 추석 다음날인 14일에 축제를 열었다. 그것은 이주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여성들의 참여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1800명이 넘는 이주민들이 행사장을 메웠고,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행사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아시아 아프리카로부터 온 이방인들이 하나로 연결된 천막 안에서 음식을 나누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어렸을 적 고향에서 했던 전통놀이에도 참석한다. 국가 대항 미니올림픽은 입장할 때부터 결연한 애국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 나라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불사르겠노라 하는 각오로 달리고, 뛰고,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베트남 현지 가수를 초청해 자기 나라 노래를 들으며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장소를 허락해 주신 계명대학교 교목실장님이 방문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는 추석 명절이 잊혀지고 있는데, 여기에 오니 명절 기분이 나네요."

처음 이 축제를 기획할 때에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주민들이 쓸쓸히 명절을 보내는 모습이 안타까워 시작했는데 햇수를 거듭하면서 축제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손님으로만 초청받았던 이주 친구들이 이제는 초청자가 되고, 봉사자가 되어 있다. 음식도 한국 사람들이 만들어 제공하지 않고 이주민들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작은 후원함에는 이심전심의 따뜻한 사랑이 전해진다. 올해 모금된 돈은 방글라데시 어린이 학교 보내는 사업을 시작한 밀턴 선교사(본교회가 세 번째로 파송한 현지인)의 '미션 베이커리(Mission Bakery)'에 빵 만드는 기계와 오븐 구입을 위해 보내려고 한다.

국경을 넘고 인종과 이념을 넘어 모두가 형제자매로 느끼는 현장, 나보다는 너를, 너보다는 우리를 더욱 소중히 여겨 서로 섬기고 나누는 것이 우리 주님이 이루고자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아닐까.

이주민들을 위해 큰잔치를 해마다 열 수 있도록 배후에서 변함없이 후원해 주고 있는 지자체와 이웃 교회들, 계명대학교 교수선교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과 지인들에게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고경수 목사/대구평화교회·대구이주민선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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