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뜻이 이 땅에
[ 가정예배 ]
작성 : 2019년 09월 30일(월) 00:10 가+가-
2019년 9월 30일 드리는 가정예배

홍수근 목사

▶본문 : 마태복음 6장 10절

▶찬송 : 462장



우리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천국 대망의 성도들이지만 동시에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사는 세속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방불할 만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본능을 따라 사는 짐승들보다 훨씬 못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우리 내면에서 발견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그 모습을 통해 스스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성장시키시기 위해 이 땅 가운데 오신 것이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방불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 가운데 오신 것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기도 중 가장 아름답고 능력 있는 원형은 주기도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자기 전에 늘 주기도문으로 하루를 결산하고 잠을 청한다. 성격이 좀 예민한 편이어서 원래 잠을 깊게 잘 못자는 사람이었지만 주기도문으로 하루의 감사와 회개 그리고 간구를 통해 나의 하루의 마감을 주님께 맡긴다. 이 습관이 생기고 나서는 현재 숙면의 은혜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기도문의 내용 중에서는 거시적인 기도가 앞부분에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정말 거창하고 광대한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인 한사람의 심령과 가정과 그리고 교회에 어떻게 적용해야 이 기도문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기독교는 한 개인의 심령에서 시작되지만 온 인류를 품는 역사 한복판의 개혁종교이다. 우리는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만, 동시에 역사의 한복판에서 정의의 칼날을 세우며 사랑으로 공동선을 만들어 가는 주님의 제자들이다. 이런 그리스도인이 정의의 감각이 무뎌지고, 기득권에 안주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이미 맛을 잃은 소금이요 빛을 잃은 등잔대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세상에 살게 하셨으니 세상에 살면서 갖는 문제들에 대해 방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에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의 기도로 하늘의 뜻을 계속 물으라고 명령하신다. 동시에 우리가 사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주님 주신 답을 따라 살아가라고 명령하신다. 사실 답을 몰라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많지 않다. 우리의 이기심과 방관이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지는 것을 늦추고 왜곡하고 심지어 막고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세상이 기독교에, 그리고 복음에 등을 돌리기 전에 복음으로 사는 모습을 교회가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그 복음이 세상 가운데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부족하지만 달려가야 한다. 그 작은 발걸음에 하늘의 뜻이 담기고, 그 작은 발걸음들이 모아질 때 세상은 하늘의 뜻으로 가득 찬 땅이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기도처럼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에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홍수근 목사/동교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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