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본 것을 글로 옮기기
[ 루이스다시읽기 ]
작성 : 2019년 09월 10일(화) 08:00 가+가-
<2> 루이스의 창작 과정
루이스의 창작 과정은 매우 독특하다. 루이스 글을 공감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루이스의 글쓰기 방식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이스는 자신의 창작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결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나에게 글쓰기 과정은 말하는 것이나 집을 짓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새가 바라보는 것과 매우 닮았다. 나는 그림들을 눈으로 본다. 이 그림들 중 일부는 공통적인 취향, 즉 매우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들이 그룹별로 묶인다. 조용히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들은 스스로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 즉 이미지들이 먼저 다가온다." 루이스는 다른 글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모든 것들, 예를 들어, 썰매를 타는 여왕과 위엄 있는 사자 등은 모두 이미지들로부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들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거품의 일부분이었다."

'나니아 연대기'의 창작 과정에 대해서도 루이스는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나니아 책 7권 그리고 S.F.소설 3권 모두 다 내 머릿속에서 그림을 보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그것들은 이야기가 아니고, 단지 그림들이었을 뿐이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모든 것들은 눈 덮인 숲속에서 우산과 소포 꾸러미를 나르는 파운(faun)의 그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장면은 내가 16살이었을 때부터 내 마음 속에 있었다. 그 후 내가 40살이었던 어느 날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하고 내 자신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러나 후에 아슬란이 갑자기 이야기 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내 생각에 그 즈음에 내가 사자들에 대한 좋은 꿈들을 많이 꾸었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사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사자가 왜 나왔는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사자가 거기에 있고부터는, 사자가 전체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그리고 곧 사자가 다른 6개의 나니아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어주었다."

루이스의 설명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부연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직접 본 장면들(mental pictures)을 단순히 이야기로 엮은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루이스의 글쓰기 스타일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 중의 하나가 묘사와 비유가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다는 것이다. 또한 색깔과 관련된 수식어들을 즐겨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직접 본 것들을 글로 옮겼기 때문에 위와 같은 루이스의 특징들은 당연한 결과였다.

루이스 연구를 위한 다양한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는 미국 휘튼칼리지 안에 위치한 웨이드센터. 센터 안에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집필하도록 영감을 준 루이스의 어릴적 옷장이 전시돼 있다. 센터 앞에선 필자 이인성 교수.


루이스가 말한 이야기들을 그의 작품에서 직접 찾아보자. 지면관계로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예만 들겠다. 이 작품은 오래된 집에서의 모험과 다른 세계로의 예상치 못한 여행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루이스는 4개의 대표적인 세팅(배경)을 통해 자신의 창작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는 커크(Kirk) 교수의 집과 옷장이고, 두 번째는 하얀 마녀(the White Witch)의 지배하에 있는 나니아이다. 세 번째는 아슬란(Aslan)의 통치하에 있는 나니아이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돌 탁자 언덕(the Stone Table Hill)이다. 루이스의 렌즈로 바라보기를 원하는 독자들은 특별히 위의 배경들에 대한 루이스의 생생한 묘사를 다시 자세히 읽어보기 바란다.

커크 교수의 집은 4명의 페번시(Pevensie) 아이들이 첫 모험을 시작하는 장소이다. 많은 방, 문, 창, 복도들로 인해 이 집은 매우 신비로우면서도 흥미로운 곳이며 탐험하고 싶은 유혹이 드는 곳이다. 이 집은 미스테리의 근원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기회와 희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 안에 있는 옷장은 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옷장은 우리의 현실 세계와 나나아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루이스의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루이스가 본 것과 동일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또한 루이스가 하얀 마녀의 지배하에 있는 나니아를 묘사하는데 주로 사용한 색의 이미지는 다 바래버린 흰색이다. 이 색은 불모 그리고 죽음과 직결된다. 반면에 아슬란의 통치가 새롭게 시작되는 나니아는 영원한 겨울에서 초록색 가득한 봄으로 바뀐다. 초록색은 성장과 생명을 상징한다. 나니아에 웃음과 기쁨이 찾아온 것이다. 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 소리, 부드럽고 따뜻한 공기,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 등은 모두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감각적인 신호들이다.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은 아슬란이 나니아에 다시금 가져다 준 선물들이다.

마지막으로 돌 탁자 언덕을 살펴보자. 이 언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갈보리 언덕과 유사하다. 또한 이 돌 탁자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낯선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돌 탁자는 십자가와 그 역할이 비슷하다. 이 돌 탁자는 시내 산에서 모세가 받아온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과도 흡사하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깊은 마법'(the deep magic)과 '더 깊은 마법'(the deeper magic)이 있다. 즉 기독교의 진리를 이 두 가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러나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루이스의 글은, 형식과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멋진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그 전달 도구인 언어를 통한 묘사와 비유도 환상적이다. 즉, 글쓰기의 삼박자 (형식, 내용, 표현)를 완벽하게 갖춘 모범이자 정수이다. 루이스를 20세기 최고의 문장가(stylist)라고 일컫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매력과 마력이 필자를 비롯한 독자들을 루이스에게 더욱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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