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본 선교사의 시점에서 본 한일 갈등과 기독교
[ 특집 ]
작성 : 2019년 09월 12일(목) 00:00 가+가-
아내는 오늘도 한 일본인 이웃에게서 현재의 한·일 갈등과 관련해 한국의 정부를 탓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수의 신문, 방송 등의 일본 언론들은 연일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언설들을 쏟아내고 있고,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 속에서 일본 선교사인 우리 부부는 안타깝게도 머리는 뜨거워지는 반면 가슴은 차갑게 식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11년 남짓, 결코 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본 사역의 기간 속에 여러 고난과 도전이 있었음에도 일본에 대한 부르심을 다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나와 우리 가족을 왜 일본으로 부르셨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갈 때가 많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간의 갈등이 심각할 때에 한국의 선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더 나아가 한국의 기독교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나름대로는 현 상황을 다소 긴 안목에서 보고 있다. 일제시대 한인 노동자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크게 반발하며, 이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하여 아베 정권은 무역 규제를 통하여 한국을 옥죄고 있다. 일본의 무역 규제에 맞서는 한국 정부의 대응 방식에 대해서 기독교계에서도 현재 정권과 정책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갈리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아베 정권이 강제징용노동자 문제 그리고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직시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빌미로 삼는 것은 배상금이라는 돈의 문제도 아니고, 지지율과 권력 유지라는 정치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현행 헌법을 고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바꾸고자 하는 포석인 것이다

한국은 이미 여러 차례 헌법을 고쳐왔기 때문에 헌법을 고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하는 질문도 가능하다. 하지만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자민당이 내어 놓은 '일본국헌법개정초안'(2012년 4월 결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아베 정권이 지향하는 일본의 모습이 담겨 있고 좌시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그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시해야 하는 것은, 첫째 '자위권의 발동'에 의한 선제적 공격의 가능과 국방군의 신설. 둘째, 일왕(천황)이 상징적인 존재에서 '국가 원수'로 규정되는 점. 셋째,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 등 개인의 기본권 뿐만 아니라 신앙의 자유 또한 심각한 위협에 처하게 되는 점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 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대일본제국헌법(1889년 반포)'에서 일왕은 신성한 존재로 규정되었으나 현행 헌법에서는 상징적인 존재로 격하되었다. 그러한 헌법이 다시 바뀌면 일왕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 원수의 지위에 있음으로 일왕 중심의 사회 정서 및 국가 이념 체계가 국수주의자들의 활동에 의해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헌법 20조의 개정이다.

현행 헌법은 종교적인 행위, 의식, 행사 등을 국가가 강제해서도 안되고 정치와 종교를 명백하게 분리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초안에서는 '사회적 의례 및 습속의 행위'와 관련된 것이라면 국가 기관이나 학교 등에서 종교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사회적 의례와 습속 행위는 물론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도와 관련되어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헌법이 바뀌면 일본의 국가 기관이나 공립학교 등에서 신사참배나 혹은 일본의 민족주의와 관련된 불교 행사가 장려되어도 헌법에서 그 정당성을 보장받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일본의 상징이자 국가 원수인 일왕이 자리잡게 된다. 이것은 일본 사회의 정신, 사회 정서 등의 측면에서 과거 제국주의 일본이 재현, 재건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일본의 과거는 찬란한 것이어야 하고 '사소한' 과오는 덮어두고 잊혀져야 한다. 군위안부, 강제징용 노동자 등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일본의 '새로운 과거'를 향해 가는 길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아베 정권은 밖으로는 한국이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문제를 꺼내는 것에 대해서 거세게 공격하는 한편, 안으로는 언론, 교육, 미디어 등의 수단을 동원해서 일본 제일주의를 국민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일본 내에서 이러한 방향성에 문제 제기를 하는 개인, 집단들은 일본 우익들의 신랄한 비판의 표적이 되고, 실질적인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일본의 양식 있는 시민들, 양심적 지식인들은 역행하는 정치 권력과 대립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건전한 기독교인들은 과거의 죄를 거듭 뉘우치고, 반성하지 않는 권력자들에 대해 복음의 정신으로 광야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일본 사회의 소외된 이들과 함께 걷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평화의 복음의 실천(마 5:9)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사회 전체에서 보자면 소수인 이들과 마음과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파송된 우리 선교사들의 본분인 것이 자명해진다. 선교사의 사명은 평화로운 곳에서 평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없는 곳에서 복음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가운데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 어떤 고난과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갈등의 당사자이면서 여전히 이웃인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불의와 싸우되 불의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로서 서로 용서하며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일본의 기독교인, 시민들과 뜻을 같이 하는 것이다. 주여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필자 주:이 글이 표방하는 의견은 본교단 일본현지선교회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원중 목사/총회파송 일본선교사, 교토에 있는 同志社大에서 일본기독교 역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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