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를 보는 신학자의 시각
한일 갈등과 기독교인-(1)한일갈등의 원인과 성경의 교훈
작성 : 2019년 09월 06일(금) 00:00 가+가-
올해는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국가의 주권을 찾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였던 우리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삼일운동 100주년을 보내며 요즈음 우리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를 침탈하였던 일본의 망령을 보는 것 같다. 그들은 지난 7월 4일 수출규제를 결정하였으며, 8월 2일엔 백색국가 명단에서 우리나라를 제외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에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한국의 전략물자 밀반출 및 대북 제재 위반을 이유로 들어 이런 조처들을 강행했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의 판결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었는데, 일본은 이에 대해 1965년에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도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반발했다. 지금껏 일본은 위안부 문제로 세운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배상 청원 등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외교적 불만을 토로해오는 중,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해 실력 행사를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일 문제에 예민한 올해, 이런 일본의 조처들은 우리 국민들을 격분하게 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과 맺은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노력,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정부와 국민들은 다각적 대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작금의 사태들을 보며 이런 생각도 든다. 자기들이 잘못한 것이 없다는데 너희들이 잘못했다고 계속 말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회개와 사과는 자발적으로 하여야 의미가 있는 것으로, 굳이 그런 사과와 보상을 우리가 강요하여 얻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몰염치한 일본에게 이전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계속 바라는 것보다, 우리 역사에서 고난의 짐을 진 그들을 우리가 직접 위로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이 같은 작금의 위기상황이 만들어진 내면적 이유를 서너 가지로 들 수 있다. 먼저는 양국의 선거이며, 북한의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한 미·일의 불만,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력에 대한 일본의 견제 등이다. 일본은 지난 날 반한감정을 선거철에 사용한 적이 종종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런 반일감정을 우리 선거에도 이용하면 좋을 것이라는 정치권 일부의 생각도 있는 것 같아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이와 같이 요즈음 세계는 자국 우선주의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미·중의 무역전쟁, 한·일 간의 수출규제 정책, 영국의 브렉시트 등 다른 나라들과의 공생적 관계를 중시하기보다는 우선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들이 만연해있다. 물론 이런 국가이기주의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예전 서구 국가들의 식민화 정책, 노예무역과 국가들 간의 전쟁 불사 등,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것이 지구상의 국가들이었다.

이러한 국제질서 상의 아노미 현상을 보며, 예전 읽었던 독일의 신학자 한스 큉의 '세계 정치와 경제를 위한 세계윤리'란 책을 떠올리게 된다.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은 국가 간의 관계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함을 강조하는 책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는 그의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적적 사회'에서 국가와 같은 큰 집단이 될수록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였으나, 큉은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제관계에 있어 윤리적 숨결을 불어넣는 것의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세계질서엔 이런 윤리적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얕잡아 볼 뿐 아니라, 강한 나라들이 자기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법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은 이 같은 국제관계에서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음을 경고한다. 특히 오바댜서와 나훔서는 약한 나라를 압제하는 강한 나라에 대한 주님의 징벌을 강조한다. 먼저 오바댜는 강대국 에돔이 파멸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형제에 대한 폭력(1:10), 다른 나라에 대한 적대적인 행동(11), 이스라엘의 재앙을 기뻐함(12), 야곱이 고난당할 때 자랑함(12), 하나님 백성에 대한 약탈(13), 피난민의 도피를 방해함(14), 원수들의 손에 그들을 넘김(14) 등이다. 이러한 국가 간의 비도덕적인 행동들은 그의 교만함에서 나온 것으로서, 오바댜는 3절에서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과 같은 세계질서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15),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께 속하는 새 세상이 와야 할 것이다(21). 계시록 11장 15절은 다음과 같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다음으로 나훔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진멸하시는 원인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상숭배(1:14, 3:4), 다른 나라들을 노략함(2:9,13, 3:1), 주변 나라들에 행한 폭력과 살육과 잔인함(3:3), 다른 나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 능욕을 줌(3:10) 등이다. 나훔은 다른 나라들을 핍박한 강대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성의 멸망을 비참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국가들의 행위에 대해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선지자 나훔은 말하였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성경은 강한 나라들이 약한 나라들을 배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개인 간에 윤리적 책임이 있듯 국가 간의 관계에도 윤리적 의미가 게재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세계윤리 체계와 국제법을 세우는 일을 위해 서로 노력할 필요가 있는 바, 이런 일에 UN이 강제력을 갖고 나서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세계윤리의 구상은 21세기의 인류를 향한 하나의 큰 과제로서, 우리 신앙인들은 성경 속에 나타난 국제도의의 요체를 파악하여 세계윤리를 세워나가는 데에 일조해야 할 것이다.

노영상 원장/ 총회한국교회연구원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