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우간다 편 <4>
작성 : 2019년 08월 21일(수) 00:00 가+가-
2007년 봄, 한국기독공보에서 포항 어느 교회의 아프리카선교사 모집 광고를 보았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는 사인을 마음에 주셨다. 작정기도가 시작되었고, 필자에게는 찬송가 588장(공중 나는 새를 보라)과 마태복음 6:26~34절을 주셨다. 기도만 하면 그 찬송가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느라 학자금 대출로 엄청난 빚이 있었다. 또 부목사로 열심히 섬기느라 많이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 찬송가를 통해 주님이 책임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내에게는 아프리카를 향해 눈물 흘리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필자와의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선교에 관심 있느냐"라는 질문에 "저는 선교사로 서원했습니다"라고 대답했었던 아내. 불어를 전공하면서 아프리카 불어권 선교사가 되길 원했던 아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불어권으로 보내주셨다. 2008년 겨울, D국의 자그마한 공항에 도착했다. 찜통더위에 머리가 너무나 뜨거울 정도로 햇빛의 강도가 엄청났다. 치안이 좋지 않아서 브로커에게 25달러를 주고, 짐을 찾도록 부탁했다.

도착 첫날, 선배 선교사님의 아파트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그 지역은 안전해보였다. 하지만 그 분이 준비해 놓은 집은 전혀 달랐다. 현지인 마을이었기에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내내 전기도, 물도 나오지 않았다. 전기가 다시 들어올 때는 불꽃이 튀는 무서운 소리가 났다. 가전제품들이 고장나버렸고, 퓨즈도 고장 나서 고쳐야 했다. 가끔 아내가 고칠 때도 있었다. 아내는 그때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아내에게 심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래서 지금도 "선교의 시작은 좋은 집부터 구하는 것이다! 집이 '쉼터'가 되지 못하면, 그때처럼 선교는 엉망이 된다"라고 주장한다. 또 가끔 하수구가 역류해서 집 전체가 오물로 악취를 풍겼다.

낮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고, 방의 페인트칠이 완전히 다 벗겨질 만큼 습기도 너무 심했다. 몇 달 후부터 우리 부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현지인 깡패들이 집 앞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들어갔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 그날부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 집이 무려 월 1500달러(한화로 약 160만원)였다! 주 후원교회에서 보내온 선교비를 월세로 거의 다 써버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설상가상으로 땅이 사막화 되어서 과일과 야채들이 수입되어 왔기 때문에 한 달 식품비가 상상을 초월했다. 예를 들어, 배추 한 포기가 한화로 2만원이나 했다. 아들 학비까지 더해서 400만원이 필요했다.

목숨 거는 기도, 처절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셨다. 그곳의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인도해주셔서 사례비를 통해 조금씩 채워주셨다. 그런데 아들의 학비로 미화 3000달러가 당장 필요했다. 어느 날 밤, 아내가 3000달러 값어치의 도자기 하나를 쓰레기통에서 줍는 꿈을 꾸었다. 그 후, 아내의 허리 디스크로 인해서 잠깐 한국에 나갔을 때, 어느 장로님이 식사를 대접하면서 미화 3000달러를 건네셨다. 주님께서 정말 책임져주셨다. '신실하신 주님!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박석출 목사/총회 파송 우간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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