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는 교과서
작성 : 2019년 08월 21일(수) 00:00 가+가-
어느 공무원 시험 면접장. 면접 카드에 한자 이름을 안 쓴 응시자가 몇 명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스마트폰을 미리 걷는 바람에 한자를 못 썼단다. 면접관들 사이에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공무원이 한자를 모르면 되느냐, 한자는 우리글이 아닌데 왜 문제가 되느냐.

요즘 자기 이름을 한자로 못 쓰거나 뜻을 모르는 대학생들을 자주 본다. 더 어린 청소년들은 어떨까? 어른들은 아이들이 한자 모른다고 염려를 하겠지만, 이들은 뜻글자 세대가 아니라 소리글자 세대다. 그나마 책도 안 읽으니 한글 맞춤법도 미숙하다. 이런 세대가 개역성경을 과연 읽을 수 있을까?

복음서에 인용된 예수님의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고(correct), 쉽고(easy), 간결하다(simple). 그러나 그걸 설명한 성경 본문의 표현은 퍽 불명확하고 어렵고 복잡하다. 한자어, 고어도 가득하다. 문장이 길거나 비문에 가까운 것도 많다. 존대어 등 어법에 맞지 않는 것은 가득하다. 게다가 쉼표나 마침표 등 문장부호도 없다. 고유명사도 학교 교과서와 전혀 다르다. 애굽, 바사, 구스, 서바나, 구브로가 이집트,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스페인, 키프로스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성경이 고어로 된 '춘향전'처럼 보일지 모른다.

국립국어원은 매년 많은 어휘들을 표준어로 편입하고 있다. 세상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언어도 급증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에 신문 사라지듯 종이책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가 100년 전 언어로 된 성경을 고집한다면 기독교는 '꼰대종교' 취급 받기 십상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건 기득권이 독점하고 있는 지식 권력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해서 나눠준 것도 성직자들이 독점하고 있던 복음을 평신도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성경은 성직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어린이나 저학력자, 장애인 등 누구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번역되고 제작되어야 한다.

어떤 책이든 재미가 없으면 쉽기라도 해야 읽힌다. 다행히 여러 종류의 쉬운 성경들이 나와 있지만, 공번역은 대한성서공회가 편찬한 새번역 성경이다. 원문의 뜻을 우리 어법에 맞춘 현대어로 되어 있다. 표에 나와 있는 예문 몇 가지만 비교해봐도 왜 청소년들에게 새번역 성경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다음 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말이 통하는 교과서(성경)들을 다양하게 펴내야 한다.


이의용 교수/국민대·생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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