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우산
작성 : 2019년 08월 16일(금) 00:00 가+가-
9월에는 교단 총회가 있고, 그 뒤로 각 노회가 이어진다. 목회자는 개교회를 목회하는 일에 일차적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전체 교회의 일원으로도 부르심을 받았다. 교회 내적인 일과 외적인 일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바램이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쉽게 구분되거나 행해지지는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어떤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있었는데 정기노회 외에는 일체 외부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로님들이 외부 활동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전에 계시던 목사님이 총회나 노회 일로 너무 분주해서 교회 일을 잘 돌보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았고, 새로 오는 목사님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자 노회 안에서 그 교회와 목사님은 잊혀지고 멀어져 갔고, 급기야 그 교회 사정을 아는 사람조차 별로 없게 되었다. 얼마 후 그 교회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 목사님이 갑자기 사임하고 말았는데, 노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도 없었고, 갑작스런 비를 피할 우산이 되어주지 못한 채, 모두가 불행한 일로 이미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목회자의 노회와 총회 활동은 적을 수록 좋은가? 물론 목회자가 교회에 할애하는 시간을 늘릴수록 목회에는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모임 저 모임 등으로 밖으로만 분주하게 다니며 목사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소위 정치 목사가 되지 않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경건하고 순수한 목사로 남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교회에 도움이 될까? 위의 예에서 본 것처럼, 자의든 타의든 외부와 단절하고 교회 일에만 시간을 들이는 것이 목회자와 교회의 영적, 사회적 건강에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목사와 장로들이 노회나 총회의 다른 교회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짐으로써 자신들의 위치와 방향을 확인할 수 있고, 서로를 돕고 격려하여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통이 결국 안팎의 교회를 건강하게 하지 않을까?

성경에도 예루살렘에서 모인 사도들의 회의(총회)가 베드로의 이방선교 보고를 듣고 기도하며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행11:1~30). 이로써 복음이 유대인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기독교회가 되었다. 만약 사도들이 각기 자기가 맡은 교회만 목회하고 서로 만나지 않고 의견을 모아 함께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같은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금에 총회적으로 결정된 일로 말미암아 사회에서 큰 파장이 일어난 것을 본다. 오늘날은 산업화 사회를 넘어 정보화 사회가 되었기에, 옛날에는 사회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던 교회의 결정들을, 이제는 세상이 먼저 알고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알기만 하지 않는다. 사회의 교회에 대한 인식과 신뢰도가 교회의 활동과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면 교회가 세상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이 어떻게 판단하든 교회의 신앙과 가치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는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밝혀야 할 사명이 있다. 어쩌면 이제 더욱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교회들의 연합체인 노회나 총회가 갈등과 분쟁을 그치고, 세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졸속의 결정에서 벗어나, 세상 앞에 더욱 밝게 빛나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가 자기 교회 안에만 머물지 말고 노회와 총회에 참여하여 함께 가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하나되게 섬기는 또 하나의 길이다. 목회자와 장로는 노회나 총회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구경꾼이 되거나 도외시 하지 말자. 누가 해도 해야 하는 일이니, 도덕성도 전문성도 모자라게 될 때까지 버려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기 교회와 함께 상회를 바르게 인도하자.

큰 교회와 작은 교회는 목회자의 상황이 서로 다를 것이다. 성도 수가 적을 수록 목회자를 요청하는 일은 적을 수 있고, 성도 수가 많을 수록 목회자를 요청하는 일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는 마찬가지다. 작은 교회 목사는 시간이 많아서 노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바른 길로 가도록 하기 위해 희생하며 돕는 것이다. 또한 큰 교회는 여유가 있어서 많은 상회비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자신이 소속된 노회나 총회가 바르게 나아가기를 바라기에 기꺼이 희생하며 섬기는 것이다. 주께서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이 찾을 것이라 하셨다. 만약 큰 교회의 목회자가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해서 참여는 않고 돈으로 섬김을 대신하려 한다면 더욱 큰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그것은 선한 자라도 권력을 가졌을 때 돈으로 타락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값진 시간을 기꺼이 할애해줘야 한다. 이것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때, 한국교회는 하나님과 세상 앞에 더욱 믿음직하고 균형잡힌 교회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황영태 목사/안동교회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