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가루(레 2:1-16)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작성 : 2019년 08월 16일(금) 00:00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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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는 화덕이나 철판이나 냄비로 빵이나 떡이나 부침개나 과자를 만들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곡식제사이다. 첫 곡식의 이삭을 볶아 드리거나, 갓 찧은 곡식을 드려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제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운 밀가루와 올리브기름과 유향(향신료)과 소금이 필요하다. 반면에 제물에 넣지 말아야 할 재료에는 꿀과 누룩이 있다.

소제를 드리기 위해 먼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곡식 예물로 고운 가루를 준비하고, 그 위에 기름과 유향을 붓는다. 소제를 드리는 사람은 제물을 아론 자손 제사장들께 가져가고, 제사장은 그 소제물에서 고운 가루 한 줌과 기름과 모든 유향을 집는다.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제단 위에 불사르고, 소제물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한 성물로 아론과 그 자손들의 몫으로 삼아 제사장의 소득이 되게 한다.

소제물의 핵심은 고운 가루에 있다. 들에서 추수한 밀의 거친 낟알을 모아 그대로 제단에 바치면 안 되었다. 낟알이 아니라 고운 가루로 갈고 빻아 바쳐야 한다. 제분기가 없던 시대에 낟알을 부수어 고운 가루를 얻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소제를 드리는 사람은 낟알을 곧게 빻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부수어지고 깨져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운 가루가 소제의 기본 재료라면 넣어야 하고, 넣지 말아야 하는 물질이 있다. 소제에 들어가는 물질은 올리브기름과 유향과 소금이다. 먼저 기름은 땅에서 난 곡물을 기름지게 하는 물질로,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 대표적으로 임금과 예언자와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었다.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메시야라고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하시는 동시에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다. 기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삼상 10:1)과 기쁨(사 61:3)을 상징한다. 다음으로 제물에 유향을 넣는다. 유향은 제물을 향기 나게 하는 물질로서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기도 한다(시 141:2, 계 5:8). 마지막으로 소제에는 반드시 소금을 넣어야 했다. 소금은 다른 물질을 변하지 않게 한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소금 언약(민 18:19)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넣어야 한다면, 반대로 넣지 말아야 하는 물질이 있는데 누룩과 꿀이다. 이는 발효 물질인 누룩과 꿀이 다른 물질을 변하도록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물을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은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배경으로 한다. 성경은 누룩과 꿀이 가지고 있는 나쁜 성질에 대해서 비유한다.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는데(마 16:6, 막 8:16), 여기에서 누룩은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뜻한다. 바울도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고 경고한다. 레위기 2장 2절과 16절에서 제단 위에 태우는 소제물인 '기념물'은 '기억하다'의 어간에서 온 낱말로, 하나님이 소제물을 기억해 주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복음서가 번제를 통하여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부름으로써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변증한 바 있다(요 1:29).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떡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 6:35)."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 소제물로 바치셨다고 하는 희생의 삶을 보여준다. 또한 번제와 마찬가지로 소제 역시 '야웨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레위기 2장 2절과 9절은 말한다.

제물로서의 밀을 거친 낟알로 드리지 않고 고운 가루로 갈고 빻아 드리는 것은 소제를 드리는 사람이 먼저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먼저 자신을 부인하는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쉽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고운 가루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사람이 드리는 소제물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고운 가루로 만들고 태우는 과정을 기억하신다.

철학자 르네 지라르(R. Girard)는 '폭력과 성스러움'(1972년)에서 종교 행위와 폭력 사이에 있는 경계에 대해 날카롭게 관찰하였다. 짐승을 죽여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번제는 생명 살해라는 피할 수 없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폭력성을 대가로 성스러움을 구현하는 무의식의 메커니즘이 제사 안에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른 한편 구약 제의의 전문가 알프레드 맑스(A. Marx)는 '구약의 소제: 존경의 공물에서 종말론적 식사로'(1994년)에서 소제야말로 번제와 같은 폭력과 생명의 희생을 수반하지 않는, 종말론적 시대의 이상적인 제사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들이 애써 기르고 경작한 집짐승과 곡식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림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있는 연대성을 표현하였다. 그래서 '제물'이라는 종교의 전문용어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음식'이라는 민중의 생활언어로 친근하게 불린다(레 3:11, 16, 21:6, 8, 17, 21, 22, 22:25). 이 표현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김선종 교수/호남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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