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를 불살라 드리라(레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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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19년 08월 02일(금) 00:00 가+가-
출애굽기 25~40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령하시고, 백성은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을 완성한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모세를 회막, 곧 만남의 천막에 부르신다. 레위기의 히브리어 첫 낱말 '바이크라', 우리말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가 유대인들이 레위기를 부르는 제목이다. 이 히브리어 제목이 중요한데, 하나님은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을 완성하게 하신 다음에 그 안에서 할 일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레위기 1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제사인 번제를 규정한다. 번제는 소, 양, 염소, 비둘기 예물의 전부를 불살라 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 당시 사람들이 광야에서 금은보화 등으로 예물을 드릴 수도 있었지만(민 31:50~54), 집짐승을 드린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백성들이 1년 내내 함께 생활하며 키웠던 집짐승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자신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과 은총에 감사하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9절에 나오는 '전부를 불살라 드리라'는 표현이 번제의 내용을 잘 설명한다. 먼저 번제는 짐승 제물의 가죽을 제외한 전부를 온전히 불살라 드리는 제사이다. 가죽만 제사장의 소득으로 남겨 놓고, 나머지는 제단 위의 불로 살라 드렸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짐승을 회막 문 앞으로 가져오면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어야 한다(1:4). 이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을 동일시하는 것을 뜻한다. 번제물을 불에 태울 때, 단지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가 불에 타는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불에 태우는 것을 상징한다. 이렇게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동일시함으로, 짐승이 불살라 죽게 될 때 바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9절에서 내장과 정강이도 모두 제단 위에서 태워야 하는데, 구약성경은 사람의 내장에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몸뿐 아니라, 감정과 의지 등 지, 정, 의의 전 인격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을 뜻한다.

예배하는 사람이 제물과 동일시되는 것은 설교자이든 회중이든 예배하는 사람은 예배하는 능동적 주체이기 이전에 하나님께 바쳐지는 수동적 제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에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살아있는 제물로 자신의 삶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 이러한 가르침을 표현한다.

둘째로 번제는 제물을 불살라 드리는 화제이다. 제물, 곧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불태우는 것을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삶에서 지은 죄를 불태운다. 그래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1:4).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음으로써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제물과 일체가 된다면, 제물이 죽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물로서 예배하는 사람을 불사르는 예배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예배를 통해 죽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죽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다시 사는 것을 위함이다. 예배하는 사람은 자신이 죽은 뒤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짐승 전체를 태우면서 자신이 전적으로 죽고 앞으로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지금까지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 새 생명을 얻은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죽음 뒤에 생명을 얻는 것은 5절에 나와 있다. 예배하는 사람이 제물 위에 안수한 다음에 수송아지를 잡고 거기에서 나온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린다. 생명을 상징하는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써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린다. 이것은 속죄의 피이고, 피를 통해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게 된다.

예배는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자신을 십자가 앞에 죽여야 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모여 부활하신 주님을 매주일 경험했던 것과 같다.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예배자도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온전히 태워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온전히 나 자신을 부정하고 부인하고, 말씀을 통해 죄가 사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죄의 고백과 용서가 담긴 번제의 예배를 통해,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한다.

마지막으로 번제는 하나님께 개인과 공동체를 드리는 행위이다. 예배자이기 전에 제물이고, 전적인 헌신을 뜻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드리는가의 문제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1장에만 '여호와께'라는 표현이 다섯 번 반복되어(1:2, 9, 13, 14, 17), 예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사람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소나 양이나 염소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아니라, 비둘기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서 가진 것 없는 사람도 예배 공동체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전부를 불살라 드리는 참된 예배의 결과는 하나님께 기쁘심이 되고(1:3, 4),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1:9, 13, 17). 그런데 과거나 오늘이나 늘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다. 아침, 저녁으로 짐승의 각을 뜨고, 피를 제단에 뿌리는 복잡한 절차가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절차로 끝나게 된 것이다.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은 백성들의 형식적인 예배를 비난한다(사 1:11~15, 호 6:6, 8:13, 암 5:21~23, 미 6:6~8). 예수님도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라고 말씀하신다(막 12:33). 형식에 빠져 마음이 없는 예배보다 하나님을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라고 말씀하여 참된 제물의 모범을 예수님에게서 찾는다. 예수님 자신이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온전한 번제물이시다.

김선종 교수/호남신학대학교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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