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식 하던 날
작성 : 2019년 07월 15일(월) 17:59 가+가-
순서에 따라 분병 차례가 됐다. 목사님이 분병위원들을 앞으로 부르셨다. 장로님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말없이 앞으로 나가 강단으로 올라가서 일렬횡대로 늘어섰다. 목사님이 먼저 떡을 받은 후 분병위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성경에서는 떡과 잔이라고 했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이 나눈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에 먹는 발효 안 된 빵과 포도주였을 것이다. 교회서는 미국에서 수입했다는 5백원 동전 크기의 동그랗고 납작한 성찬전병과 교회서 직접 담은 포도주를 사용한다.

이어서 분병위원들은 성찬기를 하나씩 받아 들고 맡은 분단으로 흩어졌다. 흰 목장갑을 낀 장로님의 얼굴은 엄숙했다. 성찬을 받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경건히 성찬기를 내밀었다. 이윽고 중간 쯤에 이르렀다.

그 줄에는 이전부터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한 여 성도가 앉아 있었다. 그는 목사님이 성경을 읽을 때부터 울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그는 우느라 분병위원이 자기 앞에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옆 사람이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스치듯 톡톡 토닥이면서 귀띔을 해 주었다.

그 성도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인지 얇은 전병을 잘 잡지 못했다. 전병은 성찬기의 스테인리스 바닥에 바짝 붙어서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병위원 장로님은 묵묵히 그가 잡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있는 목사님은 장로님이 시야를 가려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듯 했다. 다른 교우들은 기도를 하거나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속으로는 무슨 일로 저렇게 서럽게 우는지 궁금해 하거나 별나게 믿는다고 나무랄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성찬식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나눈 식사를 기념하는 예식이다. 문득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 식사 장면이 떠올랐다. 제자들과 나눈 최후의 만찬 며칠 전 식사 자리였다. 식사 도중에 마리아라는 여자가 향유를 들고 나타났다. 노동자의 한 해 연봉에 해당하는 값 비싼 나드 향유였다. 그는 아낌없이 향유 옥합을 깨뜨리더니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닦아냈다. 순간 시몬의 집은 향유 냄새로 가득했다.

지금 이름 모를 여자 성도는 눈물로써 예수님의 발을 씻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눈물을 훔친 손수건에는 향유 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예배당 안에 퍼져가는 저 향유 냄새, 가나 혼인잔치에서 맛있는 고급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물 떠온 하인만 알았듯이 향유 냄새가 어디서 무슨 일로 이렇게 예배당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는지 하나님과 그 성도만 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후의 만찬을 마친 후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길을 나서던 예수님의 제자 도마를 기억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서 주인공 로드리고가 동판에 새겨진 예수님의 얼굴 밟기를 강요당하듯 누군가 이 떡과 잔을 받고 순교의 길로 갈 것인가를 묻는다면 서슴없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기꺼이 예수님의 향기로운 제물로 사라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세례를 받고도 떡을 못 받으신 분은 손을 들어 표해 주십시오." 목사님의 말에 모두 잠잠했다. 다음은 분잔 차례였다. 모든 순서는 침묵 속에 진행됐다. 창문 밖에서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재용 장로/성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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