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께 영광" 전학수 장로의 삶과 신앙
[ 기획 ]
작성 : 2019년 07월 18일(목) 07:30 가+가-
영광건설주식회사 대표이사 전학수 장로 (진주대광교회)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만 영광이기를 기도하는 전학수 장로. 그는 믿음의 기업인 영광건설주식회사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전학수 장로ㆍ강향순 권사와 아들 부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전학수 장로(진주남노회 진주대광교회)의 신앙 지지대 역할을 하는 구절이다. 믿음의 기업인 영광건설주식회사 대표이사인 그는 무슨 일을 결정하기 전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인지를 살펴보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다. 그가 신념으로 삼아온 '오직'의 원리는 삶의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게 만든다.

전학수 장로는 경북 청송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전 장로가 3살 무렵 어머니는 시누이로부터 복음을 수용하고 자녀를 신앙으로 이끌었다.

주님을 만난 어머니는 교회생활에 열심을 보였고, 이를 통해 얻어진 마음의 안식과 평안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뿌리내렸다. '막둥이 전학수'는 어머니 등에 업혀 청송 현동교회를 다녔다.

청소년기의 전 장로에게 아버지는 기도제목이었다. 유교문화에 심취했던 아버지는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 주도로 지내던 제사는 전 장로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전 장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제사를 지낼 때 절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아버지에게 맞을 각오를 하고 제사에서 절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따끔하게 혼냈다. 그럼에도 다음 제사 때 역시 절을 하지 않았다.

전 장로는 "제사에서 연이어 절을 하지 않자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셨다"며 "아버지께 '신앙 정체성에 따라 절을 하지 않겠다'고 설명드리자, 결국 내 뜻이 받아들여졌고 이후 제사에서 절을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돌이켜 보면 전 장로 인생에 있어 이 때의 일은 신앙이 두터워지기 위한 연단의 과정이었다. 전 장로는 계속해서 아버지의 결신을 위해 기도하고 아버지를 설득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됐다.

회사 집무실에서의 전학수 장로. "이윤을 남기려고 교회 건축을 하지 않는다"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는 달란트를 더 살리려 경남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건축구조)를 취득했다.
전 장로는 청소년 시절 기도원으로 수련회를 가면 겁없이 한밤중 산에 올라 기도를 하고 돌아왔다.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도 지혜가 필요하면 산에 올라 기도로 답을 얻곤 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이 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무언가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무조건 산에 올라 바위 위에서 소리를 지르며 기도했다.

"기도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는 걸 알았어요.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신앙이 지금보다 순수하고 열정적이던 것 같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그는 대구의 한 건설회사에 취업하며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대구 동광교회에 다니던 그는 이 무렵 신앙인생의 동역자인 부인 강향순 권사를 만났다.

20대 후반 결혼 후 처가쪽인 진주로 터전을 옮겼다. 전 장로는 건설회사에 재직하고, 부인 강 권사는 피아노학원에서 일하면서, 주일 성수는 진주대광교회에서 지켰다.

전 장로는 "아내 집안은 할아버지가 장로님이었고, 믿음이 투철하신 분들이 많았다. 아내와는 영적인 교감이 잘 맞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부는 외아들 전휘 집사를 엄하게 키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근본임을 가르쳤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잠언과 에베소서 등에서 말하는 양육의 지혜를 훈계의 기준점으로 삼았다.

전 장로는 재능을 살려 2004년 영광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삶의 제1가치인 '영광'으로 했다.

5년을 기도로 준비한 회사 설립이었다. 교회 건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각오를 마음판에 새겼다. 자기발전을 게을리하지 않고 2007년에는 경남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건축구조)를 취득했다.

사업에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남선교회 봉사에 헌신한 그는 최근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차기 수석부회장 후보에 추대됐다.
회사를 운영한지 15년이 지난 현재, 그동안 협력업체들과 그 흔한 문제 한번 발생한 적 없는 것을 전 장로는 최고의 감사로 꼽았다.

전 장로는 "건설회사는 보통 설립 3년 정도 지나면 절반이 문을 닫는다. 10년 정도 지나야 계속적으로 유지가 될지 결정되는데 우리 회사는 이제 15년을 넘었으니 원만하게 경영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영광건설주식회사는 서부경남 지역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회사가 됐다. 교회는 30곳 정도 건축했다.

기도의 사람이면서, 매사 얼렁뚱땅이 없는 성격이 사업체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누가 봐도 반듯한 선비같은 인상을 갖고 있으면서 불굴의 뚝심이 있다.

그와 남선교회 활동을 같이 하는 지인들에 따르면, "외유내강형으로 성품은 온유하고 온순하나 일 할 때는 카리스마있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다"고 한다.

그의 경영철학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윤을 남기려고 교회 건축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업가가 무슨 이윤을 재지 않겠냐고 반문하겠지만 실제가 그렇다.

건축의 상당수가 진행하면서 추가금액이 늘어나는 상황이 많은데, 전 장로는 시작할 때 맺은 계약 금액을 완료 때까지 고수한다. 비록 추가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말이다.

전 장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교회를 건축하는데, 다투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다. 내가 수익이 줄어 든다고 해서 교회와 다투면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숨겨진 일화가 있다. 한 교회가 새롭게 건축을 추진하다 자금난으로 중단된 소식을 접하고 전 장로의 회사가 자처해 마무리를 지었다.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사실 돈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 교회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교회명을 '영광'으로 바꿨다. 그 교회는 훗날 건축비용의 일정부분을 영광건설주식회사에 갚았다.

여러 교회를 돕다 보면 하나님이 다른 방법으로 회사 운영의 활로를 열어준다는 것이 전 장로의 간증이다. 병원이나 상가 등 일반건축으로 회사 재정이 채워지는 경험을 수차례했다.

전학수 장로의 지인들과 교회에서는 그를 선교지향적 마인드가 강하고, 모든 사람들을 주께 대하듯 섬긴다고 말한다.
그는 수익의 일부분을 선교로 환원하고 있다. 남인도에 교회를 개척했고, 해외 선교사들과 시골의 어려운 교회들을 지원하고 있다. '선교와 정직'이 사훈인 회사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전 장로는 "하나님께서는 선교를 제일 좋아하실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남들이 하는 만큼도 아니고 조금 흉내만 내고 있다"고 겸손해했다.

전 장로가 출석하는 진주대광교회 담임 장지현 목사는 "전 장로님은 선교지향적인 마인드가 강해 교회와 관련된 일이라면 본인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헌신한다"며 "특히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이 되고자 누가 보든 안보든 충성스럽게 봉사하며, 은밀하게 연약한 사람들을 많이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전 장로의 행실은 주변인들에게 귀감이 되어 최근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차기(제79회기) 수석부회장 후보로 추대받았다. 전 장로는 남선교회에서 전국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홍보부장을 맡고 있다.

전학수 장로는 "평신도사역이 보다 전문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적 흐름 가운데 남선교회 회원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선교, 교육, 봉사를 능력있게 감당하여야 하겠다"며 "남선교회전국연합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70만 회원들과 함께 이 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신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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