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엄마 찾으러 스웨덴에서 왔어요"
[ 흔적을찾아서 ]
작성 : 2019년 07월 15일(월) 16:54 가+가-
5. 엄마 찾아 삼만리(해외 입양인 엠마 루네스팡 이야기)-상

"엄마 체온이 담긴 흙 한줌이라도 가져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해외 입양인 엠마 루네스팡.

본보가 연재하고 있는 '흔적을 찾아서' 시리즈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기도에 감사드린다. 제헌절을 맞아 입양특례법에 따른 해외입양에 관한 문제점을 주제로 한 '엄마 찾아 삼만리(해외입양인 엠마 루네스팡 이야기)'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그녀는 "뿌리의집이 있어 다행스럽고 평안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사진 오른쪽부터 뿌리의집 김도현 대표, 엠마, 필자.
지난 5월 30일 오후 3시 '뿌리의집'. 필자는 해외입양인 엠마 루네스팡(Emma Runespang)을 만났다. 엄마 찾아 스웨덴에서 온 여인이다. 1982년생이니, 금년 37세, 초대면이건만 낯이 설잖다. 유럽에서 살고 있는 둘째 딸을 만난, 그런 느낌이었다. 순간,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이 생각났다. '엄마 찾아 삼만리'-이태리 소년 마르코, 아르헨티나로 떠난 엄마를 찾아 무작정 집을 나섰던 흥미진진한 모험담. 천신만고 끝에 마르코는 엄마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해피엔딩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해외입양인 엠마루네스팡은 슬프고도 가슴 아린 사연을 안고있는 여인이다.

-엄마 찾으러 연전(年前)에 도왔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이 땅에 없대요. 하늘나라로 가셨대요. 거짓말인 것만 같아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또 어디에 묻히셨을까? 묘지라도 찾아서 엄마 체온이 담긴 흙 한줌이라도 가져가고 싶어서 이렇게 또 찾아온 겁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반겨주지 않아요. 저 같은 사람을 반겨 맞아주는 뿌리의집이 있어 다행스럽고 평안합니다. 더욱이나 고 목사님께서 이렇게 저의 답답한 사정을 들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체온이 담긴 흙 한줌' 가져가고 싶어서 스웨덴에 살고 있는 엠마는 3만리도 넘는 어머니의 나라를 다시 찾아왔건만, 그러나 그녀의 지극히 작은 꿈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왜, 무엇이, 그토록 애절한 소원을 가로막는 것일까? 뿌리의집 대표 김도현 목사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

#'뿌리의집(KoRoot)'

-저희 뿌리의집엔 이렇게 안타까운 사연을 안고 찾아오는 입양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현행 입양법엔 친부모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것입니다. 뿌리의집은 뿌리를 찾아 고국을 방문하는 해외입양인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이처럼 불합리한 법을 개정하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는 등 해외 입양인들을 섬기고 있는 아주 작은 시민단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토는 이렇습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낮은 자리(Truth and Reconciliation Underground)'.

7월은 제헌절(制憲節)이 들어있는 준법애국애족(遵法愛國愛族)의 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도대체 어떤 법조문이 우리들의 지극히 친애하는 해외동포(海外同胞) 엠마 루네스팡을 슬프게 하는 것일까? 아니,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일까. 입양특례법 제36조 3항이다.

-친생부모가 사망이나 그 밖의 사유로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양자가 된 사람의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친생부모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입양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뿌리의집 김창선 권리옹호팀장의 부연설명을 듣는다.

-첫째 친생부모가 사망했을 경우, 둘째 양자가 된 사람의 의료상의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이들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을 경우엔 친생부모의 정보공개 동의 없이 입양정보는 공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엠마 루네스팡의 경우, '의료상의 목적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그녀를 스웨덴으로 보냈던, 그러기에 믿고 찾아왔던 바로 그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정보공개불가 통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청천벽력(靑天霹靂), 마른 하늘에 날벼락 아니런가. 사실인즉, 필자 또한 엠마 루네스팡을 중심으로 입양기관의 활동을 취재하고자 '한국기독공보사' 사장과 편집국장 명의의 공문을 대한사회복지회 회장 앞으로 발송한 바 있다. 그러나 정식 공문으로 회신을 받지 못한 채 일선 실무자 선에서 '정중하게' 유선통보로 방문불허의 문전박대(門前薄待) 처사를 경험해야 했던 것이다. 사랑과 봉사를 표방하는 사회복지기관의 허상(虛像)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거니와 하물며 이방 나그네가 '엄마 찾아 삼만리' 모국(母國)을 찾아왔다가 겪게되는 비애야말로 어떠했을 것인가, 넉넉히 짐작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법치국가(法治國家) 대한민국의 현주소란 말인가. 해외입양인 엠마 루네스팡의 그토록 슬프고도 가슴 아린 사연을 필자가 인지하게 됐던 것은 뿌리의집 2019 정기이사회 회의 석상에서 대표 김도현 목사의 브리핑을 통해서 였다.

#해외입양, 빛과 그림자

해외입양인 엠마 루네스팡의 안타까운 사연은 필자에겐 역설적으로 지난날 입양기관과의 애틋한 연(緣)을 소환해 주는 것이었다. 1960년대, 필자는 안수집사 임직기념으로 일산 홀트아동복지회 소속의 선천성 뇌성마비 소년과 결연, 그 소년이 프랑스로 입양해 떠날 때까지 연을 맺었던 적이 있다. 1970년대, MBC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시절엔, 라디오드라마 '법창야화'와 '고은정 모노드라마 고백' 담당PD로 홀트아동복지회 부청하 회장, 애란원 김용숙 원장과 긴밀히 상호협력, 해외입양 및 미혼모를 소재로 '낳은 정 기른 정' '엄마 찾아 삼만리' '나는 미혼모' 등 라디오 드라마를 활발하게 제작, 인기리에 방송했다. 솔직히, 당시엔 국내입양도 추천은 됐지만, 오히려 해외입양을 국책사업으로까지 크게 권장, 그것이 곧 애국(愛國)이라는 사회풍조였던 것이다.

1980년대는 비극적 사건의 연속시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동시에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야기, 피묻은 총칼로 정권을 탈취, 전국적으로 712명 언론인을 강제 해직, MBC 77명 해직자 명단에 등재되는 영광을 덧입어 필자는 '백주 언론인 대학살-전라도 사냥'의 희생제물로 드려져야 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역사의 변혁은 언론의 힘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만 가능하다는 만각(晩覺)속에 '제십일시에 포도원에 나타난 일꾼(마 20:1~16)'처럼 불혹지년(不惑之年)에 신학교에 입학, 만학도가 됐던 것. 그때 소망교회 전도사를 역임하면서 만났던 '첫사랑'의 '젊은 그들' 대학생 청년들은 온실의 화초였고, 그들에게 세상 체험 학습장으로 제시했던 것이 바로 경기도 일산 홀트센터와 서울의 봉원동 미혼모시설 애란원이었다. 당시 대학부GBS(Group Bible Study) 청순한 리더들의 깜찍한 증언들을 좀 들어보시라!

-주말의 일산 홀트센터 방문은 행복 나들이 그 자체였습니다.(박준범 사장, 소망교회 시무장로)

-홀트아동들에게 선물을 들고 가는 건 보람과 즐거움이었습니다.(강지수 교수, 인하대학교 영문학)

-여름방학에 홀트 아동들과의 수영장 나들이는 진짜 천국잔치였습니다.(김신 목사, 분당명성교회 담임)

-고무송 전도사님과의 만남은 신학교수, 목회자, 선교사 등 30여 명 헌신자를 배출했습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답니다. 우린 전도사 잘못 만나 신세 망쳤다!(천병석 교수, 부산장신대 조직신학)


청년부를 지도할 때엔 서울의 신촌 봉원동 이화여대 후문 근처의 미혼모시설 애란원을 소개했다. 당시 청년회장 조건회 목사(현 예능교회 담임, 애란원운영위원회 위원장)의 증언을 듣는다.

-제가 애란원에 첫발을 딛게 된 것은 30여 년 전 소망교회 청년회장을 역임할 때, 저희를 지도해 주신 고무송 목사님(당시 전도사님)과의 애란원 크리스마스 파티 참석이 계기였습니다. 어려운 자매님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격려하자는 말씀에 무심코 따라나섰던 그 시간 기쁘기도 했고, 저는 남자로서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미혼모 사역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다는 게 오늘에 이르렀답니다. '애란원 50년사(1960~2010), 2010년 4월 10일 발행 p.8, 축사에서 인용'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그토록이나 호의적이었던 해외입양의 실상을 인지, 필자를 분노케했던 것은, 1991년 영국에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본 다음이었다. 1966년, 네 살짜리 유숙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던 어머니에 의해 스웨덴으로 입양, 수잔 브링크(Susanne Brink)라는 이름으로 낯선 땅 스웨덴에서 새 삶을 펼치게된다. 백인 가정에서 황인종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과 멸시를 당하며 사춘기를 겪어낸다. 정체성의 혼란과 신경질적인 양어머니와 오빠의 학대에 견디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 18살이 되자 집을 뛰쳐나오게 된다. 홀로 살아가다가 연인을 만나 잠시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배신을 당해 미혼모가 된 그녀는 다시금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다가 한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기독교에 귀의, 1989년 MBC TV 3부작 특집극 '우리는 지금-해외 입양아' 편에 자신의 삶을 공개, 마침내 어머니를 찾게됨으로써 오랜 방황을 끝내게 된다는 스토리텔링.

결국 어머니와의 이별은 비극을 잉태했고, 재회를 통해 행복을 되찾게 됐다는 영화는 해외입양의 허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욱이나 복지천국이라는 스웨덴조차 어머니의 부재는 지옥일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 당시 필자 역시 영국에서 유학생 생활을 하면서 자녀들과 함께 생존을 위한 삶을 영위, 철저하게 백인 중심의 유럽문화 속에서 홀로 사춘기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 여자 입양인의 비애를 나름대로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필자에게 한국의 해외입양에 관한 인식을 본질적으로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요, 이는 필자의 해묵은 고해성사(告解聖事)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엠마 루네스팡(Emma Runespang), 그녀는 누구인가?

-저는 분명 한국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저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봤습니다. 스웨덴이 무대잖아요. 스웨덴을 복지천국이라고들 얘기하지만, 부모를 잃은 해외 입양인에겐 지옥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수잔 브링크는 엄마를 찾아 행복을 되찾았잖아요. 저는 엄마의 얼굴도 모르고 흔적조차 찾을 길 없잖아요. 제가 들고 온 이 쪽지가 저를 말해 주는 '족보'랍니다.

해외 입양인 엠마 루네스팡, 그녀가 들고 온 족보, 그것은 A4용지 넉장에 영어로 번역된 신상명세서. 대한사회복지회가 신생아를 돌보면서 작성해 놓았던 기록을 요약한 도큐먼트(document). 그녀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찌하여 스웨덴까지 흘러가야 했던가를 보여주는 인생유전(人生流轉). 진정 처량하고, 기가 막힌다. 불현듯, 시인 이향아 님의 열아홉번째 시집 '어머니의 큰 산' 사모곡(思母曲) 시리즈 가운데 하나를 엠마 루네스팡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어지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 곁에 어머니가 계신다면/ 분홍인 듯, 하양인 듯 얼비치는 비단/ 숙고사, 항라, 깨끼저고리를 자매처럼 입고/ 어머니를 앞세워 멋을 부리고/ 어머니밖에는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나는 한가하기 끝이 없고/ 어머니 밖에는 세상에 없는 것처럼 어머니에 빠져있을 것입니다/ '나는 괜찮다, 네 일이나 하거라', 그런 말은 입도 뻥긋 못하게/ 내가 할 일은 오로지 어머니, 어머니 밖에는 아무 일도 없어/ 손을 잡다가 껴안다가/ 볼에 이마에 수천 번이라도 입을 맞추겠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면,/ 쓸데없는 소리지만 지금 어머니가 곁에 계신다면.

(이향아, '지금 곁에 계신다면' 제3연)

글·사진 고무송 목사 / 한국교회인물연구소장 · 전 본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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