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생명 샘물의 근원(요 7: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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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19년 07월 19일(금) 00:00 가+가-
본문은 생명 샘물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의 자기 계시와 그것에로의 초대의 말씀을 담고 있다. 여기서 명절은 유대인의 초막절을 가리킨다. 초막절의 중요성은 역사적으로 포로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솔로몬이 초막절에 성전을 봉헌한데서 유래한다(대상 5:3). 이로 인해 초막절은 성전과 특별한 관련을 맺고 있다. 초막절은 승리를 거둔 '주의 날'로서 스가랴 9~14장은 야웨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초막절의 중요성은 바로 그 장대한 예식으로 극화되고 있다. 7일간 매일 아침 성전 언덕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우물가로 행렬을 지어 내려가서 물을 긷고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라는 찬양에 맞추어 성전으로 올라온다. 이 때 무리들은 초막절의 상징인 갈대를 오른손에, 추수한 레몬을 왼손에 들고서 할렐루야 시를 찬양하면서 그 뒤를 이었다. 초막절의 끝 날은 '큰 날'로 이 날은 제사장들이 실로암에서 길어온 물을 가지고 제단 주위를 일곱 번 돌았다고 한다. 초막절 축제의 하이라이트로서 제단에 물을 붓는 예식은 마지막 때에 구원의 물을 부으시는 축복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요, 성령을 받게 될 기대(anticipation)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러한 초막절의 예식은 본문의 예수의 말씀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경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본문은 구두점에 따라 그 해석을 달리한다. 우리말 성경은 한결같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동방 교회의 읽기를 따르고 있다. 이러한 이해는 오리겐을 위시한 동방 교회의 교부들의 번역을 따른 것으로서 생수의 강이 '믿는 자'의 배에서 넘쳐흐른다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또 다른 읽기는 다음과 같다.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나를 믿는 자는 마시라.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와 같이 '그' 배가 '예수 그리스도'의 배를 가리키는 기독론적 번역이 옳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1)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표현에 대한 만족할 만한 구약성서 인용 본문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매우 어색한 표현이다 (2) 오히려 '나를 믿는 자'가 '마시라'의 주어가 될 경우 절(節)의 운율을 이루고, (3) 본문은 요 6:35의 말씀과 평행을 이루는 예수의 자기계시의 말씀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두 본문은 비록 완전한 평행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생각과 언어적 표현에 있어서 거의 일치한다. 또한 계시록에서도 그 평행을 찾을 수 있다.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 17).

요한 기자가 인용했다고 말하는 인용문은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지만 유대 전승에 의하면, 번제를 태우고, 그 위에 물을 붓는 제단은 거룩한 반석이요, 동시에 지하 세계를 봉인하고 있는 반석이다. 이 반석에서부터 마지막 때의 생수가 솟아나리라고 생각됐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전승들이 예수가 마지막 때에 '생수를 주는 거룩한 반석'임을 예시하고 있음을 밝힌다.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아래의 반석에서부터 강이 흘러나옴을 보았다(겔 47:1). 그러나 이제 예수는 생수의 강이 새로운 성전인 그의 몸(요 2:1)으로부터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신다. 생(명)수의 강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로서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요 4:14). 이는 바로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의미하며(요 7:39), 또한 예수의 가르침과 계시를 가리킨다.

여기서 '그의 배에서'라는 표현은 '그의 마음에서'라는 표현과 같은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오늘의 본문은 예수께서 죽으시는 십자가의 장면을 가리킨다. "…병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19:34). '배'를 가리키는 헬라어 '코일리아'는 '구멍'(cavity)이라는 뜻의 아람어에 대한 번역으로서 광야의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난 구멍, 또는 성전 아래의 반석에서부터 강이 흘러나올 구멍을 가리키며, 동시에 여기서는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의 옆구리의 구멍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해는 본문을 통하여 확증된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9)."

요한복음에서 성령과 생명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요 6:63). 예수가 주실 생명의 물은 다름 아닌 성령이다.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이 말은 요한복음에 있어서 '높이 들리신 후에'와 일치하고, 곧 십자가에 달리심과 부활을 의미함)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 숨을 불어넣으시고,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과 더불어 성령을 주셨다(요 20:22). 성령은 새 시대의 선물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어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고전 12:13). 바울에 있어서도 물은 성령의 표상이다. 유대 전승에 있어서도 축제의 흥겨움이 진행된 성전 뜰(곧 여자의 뜰)은 물을 긷는 곳으로 불려졌다. 이에 대하여, 랍비 죠수아 벤 레위는 "그곳에서 성령을 긷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한다.

김형동 교수/부산장신대·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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