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역사로 다시 주목받는 '일본 선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기독교 유적 탐방
작성 : 2019년 07월 08일(월) 08:04 가+가-

히라도 마쓰우라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기독교인 박해 그림을 보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들.

이탈리아 카밀로 콘스타치오 선교사가 화형을 당한 야이자 화형장 자리에 마련된 기념물. 한국 방문객을 환영하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차유진 기자】한·일 양국의 정치적 갈등이 국민 간 반목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인들의 진정한 참회를 이끌어 내려면 신뢰로 마음을 열고 신앙으로 가치관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일본 전문가들의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자는 지난 1~5일 CBS(사장:한용길)가 진행한 일본 나가사키 순례에 동행해 현지 목회자, 공무원들로부터 변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일본의 움직임은 지난해 나가사키현 기독교인 박해 흔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시작됐다. 나가사키현은 2007년부터 정부와 민간 추진체를 구성, 성당 등 초기 기독교 건축물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힘썼지만, 2015년 심사에 탈락한 후 유형의 건물에서 무형의 순교 역사로 눈을 돌리게 된다. 결국 1500년대 후반부터 250년 간 기독교인들이 숨어지낸 취락군 11곳과 성당 1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유네스코는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일본의 기독교를 보존해야 할 역사로 인정했다.

현지인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던 역사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나가사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 기독교 역사는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선교사가 1549년 일본 큐슈 남부의 카고시마에 상륙하며 시작된다. 이듬해 포르투갈 선박의 입항을 계기로 선교의 거점을 히라도로 옮긴 자비에르는 영주인 마츠우라 타카노부의 허락을 받아 포교를 확대해 나간다.

그러나 복음의 씨앗이 심긴지 40여 년 만인 159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으로 쿄토와 오사카에서 스페인 선교사 등 24명이 체포된다. 1월 9일 사카이를 출발한 이들은 히메지, 오카야마, 히로시마를 거쳐 31일 하카타에 도착하는데, 인근 마을에서 두 명이 자진해 기독교인인 것을 밝히면서 총 26명이 처형장으로 향한다. 한 겨울 귀와 코가 잘린 채로 1000km 이상을 끌려온 이들은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
일본 막부시대에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예수님의 초상화나 십자가를 밟게 했던 '후미에' 체험을 하고 있는 방문단.
최초로 영주가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기독교가 부흥했던 오무라시에선 1658년 감옥에 수감돼 있던 131명이 인근 호코바루 처형장에서 참수됐다. 도중에 가족을 마지막으로 만나 이별했다는 곳엔 현재 작은 바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오무라시엔 1671년부터 5년 동안 가로 5.3m, 세로 3.5m의 공간에 35명의 기독교인이 갇혀 있었던 스즈타감옥 이야기도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웠으며, 3명은 수감중에, 남은 사람들도 결국 처형장에서 순교했다.

나가사키 북서부 항구도시 히라도에는 1587년 6월 19일 발령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선교사 추방령 원본이 전시돼 있다. 처음엔 포교만 금지됐지만 점점 강도가 높아졌고 1614년 도쿠가와막부의 금교령 이후 기독교인 색출을 위해 예수상 등 성물을 밟도록 하는 '후미에'가 시행됐다. 또한 기독교인을 고발하는 사람에겐 상을 주고, 다섯 가정을 엮어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 전 국민이 절에 신자로 등록해 종교생활을 관리받게 했고 기독교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결국 기독교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놀라운 것은 1860년대 후반 박해가 없어지고 기독교가 묵인될 즈음 사라졌을 것으로 생각됐던 기독교인들이 나타난 일이다. 1868년 나가사키에서 활동한 한 신부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기독교인이 2만 명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폐쇄된 사회에서 7대 이상 신앙을 지켜온 이들은 겉은 불교인, 속은 기독교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일본 선교의 문은 뜻밖에도 이런 기독교 역사에 대한 현지인들의 자각을 통해 열리고 있었다. 순교 유적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주변에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됐고, 한국 기독교인들의 왕래가 잦아졌다. 허가를 받으면 주택가에서 확성기를 사용해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도 허용하게 됐다. 250년 동안 철저히 기독교를 배척했던 이들이 이제는 기독교인의 방문을 환영하는 모습이다. 명예를 짓밟고 배교를 종용하던 이들이 지금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유적지에 태극기를 계양하고 있다.

기자는 현지 사역자들에게 '과거에 이렇게 기독교의 부흥이 가능했다면 오늘날도 가능하지 않겠는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타깝지만 "오랫 동안 벗어날 수 없는 규제와 속박에 순응해 온 일본인들은 아직 현실을 뛰어넘는 종교에 마음을 열지 못하며, 일부 지역에선 모든 것보다 우선되는 유일신을 믿는 것만으로도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반면 "최근 일본에도 뜨거운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하는 사역자도 있었다.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일본교회의 예배에서 과거와 달리 뜨겁게 찬양하며 죄를 고백하고 삶을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목회자들은 공통적으로 "문화와 뉴미디어가 일본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할 도구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에선 기독교인조차도 용서에 대한 설교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기독교의 가치들이 일본인의 사고와 상충된다. 그러나 문화를 통한 소통에는 상당히 호의적이다. 어쩌면 종교도 문화의 하나로 보는 곳이 일본이다.

다행히 한·일 양국의 갈등 속에도 최근 일본을 위해 기도하며 교류에 힘쓰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일본 순교지를 다녀가면 일본 사람들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아픈 역사의 흐름은 일본을 선교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제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의 기독교 이야기는 아직 밝혀져야 할 것이 많다. 철저한 박해 속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었을까? 구원을 염원했던 순교자들에게 하나님은 침묵하셨을까? 강하지 않아도 신앙을 가질 수 있는 현대인들이 순교를 공감할 수 있을까?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는 다시 찾은 역사에서 시작되고 있었으며, 사역자들은 일본을 찾는 한국인들을 감동시킨 복음의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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