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달라야
[ 목양칼럼 ]
작성 : 2019년 07월 12일(금) 14:00 가+가-
꿈을 꾸는 것이 자유로운 세상이 아름답다. 그 세상에서는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불평등할 것이다. 결과의 평등보다 과정의 공정이 중요하다. 삶의 의욕은 결과에서 오고, 인생의 의미는 열매로 이어진다. 출발의 차이보다 출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욕망과 욕구에도 의로움을 입히면 열정으로 승화한다. 선한 부자와 게으른 가난은 양립할 수 없고 나쁜 부자와 부지런한 가난은 함께 갈 수 없다. 각자에게 고유한 삶이 있듯이 고유한 목표가 있으며, 고유한 결과가 있다. 사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등이 아니라 공정'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불평등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불가능한 평등보다 가능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제주살이 5년차이다.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제주만의 독특한 경제적 문화가 있다. 제주는 경제적인 면에서 부모자식 간에도 '너는 너이고, 나는 나'란 식이다. 경제적 차이가 아니라 존재적 다름을 인정한다. 홀어머니와 같은 집 울타리에 사는 아들 내외가 시장에서 고기 한 근을 사서 자기들끼리 맛있게 구워먹는다. 그렇다고 홀어머니가 섭섭해 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효의 시각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삶의 다름과 존재적 다름을 완벽하게 인정한다. 경제적 평등보다 존재적 자립을 우선시 하는 문화에 가끔 놀란다. 조금 차갑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유교적 전통을 뛰어넘는 존재적 숭고함이 숨겨져 있다. 척박한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한 제주민들이 만들어낸 지혜로운 문화이다.

다윗이 도망자로서 시글락 성에 살 때 일이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다윗 왕은 60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에 출정한다. 다윗이 시글락 성을 비운 사이에 아멜렉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성을 불태우고 남녀노소를 잡아간다. 두 아내를 포함해서 다윗의 가족들도 잡혀갔다. 다윗이 돌아와서 보고 깜짝 놀란다. 곧바로 군사들을 이끌고 아멜렉을 추격한다. 브솔 시내 쯤 이르렀을 때, 200명 가량의 군인들이 지쳐 뒤쳐진다. 다윗은 나머지 400명을 데리고 추격한 끝에 아멜렉을 무찌르고, 사로잡힌 사람들을 다 구하고, 전리품을 손에 얻는다. 그런데 전리품을 나눌 때 문제가 생긴다. 목숨 걸고 싸웠던 400명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200명에게 전리품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윗이 말한다. "전쟁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나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삼상 30:24)." 문자적으로 보면, 결과의 평등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윗은 전쟁에 내려갔던 사람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사람의 노고를 공정하게 본다. 결과의 평등보다 과정의 공정을 더 중시한 것이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존재적 가치를 물질보다 더 귀히 여긴 것이다. 과정의 공정이 한 사람의 존재적 가치를 더욱 더 빛나게 만든 것이다.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삼상 30:25)." 이 가치는 훗날 다윗 왕국의 초석이 된다. 이런 공동체에서 개개인은 꿈의 날개를 활짝 펴게 된다.

오늘 우리 사회는 분배와 평등에 대해 상당히 혼란스러워한다. 교회 내에서도 그 기준이 모호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분배이든 평등이든 물질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일 때 그 의미가 깊어진다. 살찐 돼지보다 가난한 소크라테스가 낫듯이 부요한 평등보다 가난한 공정이 낫고, 정의롭지 않는 국가의 부요함보다 평등하지 않은 개인의 가난이 더 낫다.

이후재 목사/저청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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