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마주하는 난민과 탈북민들
[ 땅끝편지 ]
작성 : 2019년 07월 02일(화) 00:00 가+가-

독일 마을마다 세워진 난민 숙소.

오늘날 독일사회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난민과 사회통합이다. 2015년에 89만명, 2016년에 28만명의 난민들이 독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전에도 산발적으로 난민들이 유입되고 있었지만 갑자기 120만 명을 받아들이자 사회 곳곳에 많은 문제들과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발생하였다. 독일정부는 난민들을 전국 각 도시와 마을로 분산시켜서, 독일사회 속에 스며들도록 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이 난민들의 주거지를 제한하여 슬럼화되거나 우범지대가 되는 것과는 차별화된 정책이다. 난민 대부분이 무슬림이기에 독일인들이 느끼는 정서적인 거부감은 매우 크다. 하지만 그들을 돕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독일역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400만명의 독일인들이 난민이 되어 자신들이 살던 중앙유럽과 동유럽의 고향에서 탈출하거나 강제로 쫓겨나야 했다. 독일의 동쪽 국경선은 수백 킬로미터 서쪽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는 칼리닌그라드로 개명되어 소련 땅이 되었다. 연합군은 난민을 분산시켜 1000만 명은 서독에, 400만 명은 동독지역에 자리잡게 하였다. 이들이 기존 독일사람들에 의해서 환영받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패전의 상징과도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시되고 잊혀졌다. 하지만 독일인들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난민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자신들의 과거가 자리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슈투트가르트에서도 많은 난민들이 분산되어 살고 있다. 개교회들은 직접적으로 난민들을 위한 활동을 펼치지는 않는다. 대신 난민사역을 위한 전담목사가 세워져서 난민들을 위한 다양한 모임들을 주재하며 돕고 있다. 주정부는 마을마다 난민들을 위한 집단거주시설을 만들고, 생활비를 지원하며, 어학교육과 직업교육 같은 정착과정을 세밀히 돕고 있다.

난민문제와 함께 필자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탈북민이다. 난민들 가운데 탈북민들도 섞여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2010년 처음 슈투트가르트에 왔을 때 교회 안에는 탈북민들이 몇 분 계셨다. 엄밀히 말해 그 분들은 중국 조선족으로 탈북민 행세를 하고 난민지위를 얻고자 심사 중이었다. 사정이 딱하여 교회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드렸다. 그런데 몇 년이 못 되어 진짜 탈북민들 수백 명이 우리 주에 배치되어 정착하기 시작했다. 슈투트가르트, 괴핑엔, 트로싱엔 지역교회들에 이 분들이 찾아왔다. 같은 민족이기에 뜨거운 마음으로 교인들과 함께 그 분들을 맞았고 도움을 드렸다. 하지만 그 분들 중 일부는 재정적인 도움만을 원했고, 금방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돕다가 마음 상하는 교인들도 있었다. 이제는 교회가 꼭 필요한 도움만 드리고 그냥 교인으로 대한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그 분들 대다수가 이미 한국을 거쳐서 오신 분들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그런 분들은 이미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기에 난민신청이 되지 않는다. 한국 적응이 힘들어서 신분을 속이고 브로커를 통해 사회보장이 잘 된 독일과 유럽에 들어와 정착하고자 한 것이다. 처음에는 필자도 이 부분은 쉬쉬하고 공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독일정부도 이 사실을 알고, 탈북민으로 난민신청한 분들을 우리 정부와 협의를 통해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아직 탈북민으로 난민이 허락된 사람은 없다. 여전히 수년째 긴 심사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그 분들 중에는 큰 기대로 독일에 왔지만,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느끼고 자원해서 다시 한국땅으로 돌아간 분들도 계신다.

한국사회와 교회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탈북민들과 난민들을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이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헌신이나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노력해야 한다. 탈북민들도 좀 더 열심히 인내하며 수고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남한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 이제는 무슬림 난민들까지 한국을 두드린다. 예수님 대신 우리의 대문을 두드리는 나그네를 따뜻하게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는 주님의 말씀을 부끄럼 없이 들을 수 있다.

김태준 목사/독일남부지방한인교회·총회파송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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