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때문에 완전해 집니다
[ 목양칼럼 ]
작성 : 2019년 07월 05일(금) 00:00 가+가-
삶은 단순하고 의미는 복잡하다. 항상 가던 길인데, 돌아오는 길은 어렵다. 소망의 언덕에 올라보지만 보이는 것은 앙상한 가지들 뿐이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다. 쉽게 해결 될 것 같은데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사랑이면 될 줄 알았는데 더 큰 산맥이 버티고 서 있다.

결혼 5년차 부부가 있다. 잘 지어진 집, 사랑스런 아이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가정이다. 그런데 사랑의 조화가 어렵다. 남편의 언어와 아내의 마음이 충돌한다. 남편은 집이 두렵고, 아내는 남편의 말이 무섭다. 부부가 바라는 가정이 그들에게 필요한 삶인지 의문이 든다. 바램은 있으나 붙들어줌은 없다.

부부를 데리고 창세기 여행을 떠난다. 한 구절 앞에 멈춰섰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창 2:24)…" 호흡을 가다듬고 말씀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부모가 없는데 왜 "부모를 떠나"라고 기록되어 있을까? 말씀이 가슴을 후벼 파듯 가정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가정의 중심부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먼 훗날 예수님께서 한 번 더 언급하신다(마 19:5).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라고 하신다. '떠나는' 자립과 '한 몸 됨'의 공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자립 없이 공립이 없고, 공립 없이 자립이 없다. '자립과 공립'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최고의 조건이다. 부부는 완전을 향해 때로는 홀로 때로는 더불어 달려간다. 부부는 그 과정에 혼돈을 경험한다. 남편은 영적인 공립을, 아내는 마음의 자립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가정이 매일 아침 전쟁터였다는 것을 부부는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하와를 만드시고 '돕는 배필'로 주셨다. 히브리어로 '에제르'이다. '채워주는 사람'으로 번역하면 좋을 것입니다. '홀로'에 익숙한 아담에게 '더불어'의 하와를 주신 것이다. 하와 없이 아담은 완전할 수 없고, 아담 없이 하와는 완전할 수 없다. 부부는 서로의 완전함을 위해 채워주는 존재이다. 부부가 서로에게 "당신 때문에 나는 완전해집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지상 최고의 고백이 될 것이다. 부부가 영적으로 자립하고, 마음으로 공립할 때, 가정은 사랑으로 깊어진다. 복음 안에서 남편의 언어와 아내의 마음은 조화를 이룬다.

오늘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밥 짓는 아내의 뒷 모습을 보며 읊조린다. "당신 때문에 나는 완전해집니다."

이후재 목사/저청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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