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표적(요 2:1-12)<상>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작성 : 2019년 07월 05일(금) 00:00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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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표적은 얼핏 보아 일반적인 기적 이야기 같다. 하지만 예수의 '때'에 대한 언급과 엄청난 양의 포도주(80~120L),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르는 호칭과 같은 신비스러운 표현들은 요한복음의 특징인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요한복음의 다른 표적과는 달리 가나의 표적과 성전정화 사건에서 예수는 자기계시를 드러내기 위해 강화(discourse)를 펼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첫 표적과 성전정화 사건은 예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서론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예수 사역의 첫 표적인 본문(2:1~12)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예수 사역의 마지막 표적에 해당되는 십자가의 죽음(19:17~30)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요 2:1~12과 19:17~30은 예수의 지상에서의 사역의 틀(처음과 마지막)로서 수미쌍관구조를 이룬다. 여자와 포도주가 공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 표적은 마지막 표적에 대한 예고이며, 마지막 표적은 첫 표적의 성취이다. 주목할 것은 두 번 등장하는 포도주가 요한의 특징적 표현 중 하나인 '때'와 '여자' 칭호와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십자가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오직 요한복음에만 등장한다. 요한의 묘사와는 대조적으로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막 15:23, 마 27:34).



포도주와 혼인잔치

포도주의 풍성함은 마지막 때의 기쁨을(창 49:10~12, 암 9:13-14, 호 14:7, 렘 31:12, 사 29:17), 혼인잔치는 메시야의 때를 나타내는 일반적 이미지이다(마 22:1~14; 막 2:19, 22). 유대의 전승은 포도주의 충만함과 메시아의 도래를 관련 짓는다. "새 술은 새 부대에"(막 2:22). 혼인잔치는 첫 표적의 성격을 규정짓는 연회장과 신랑의 출현을 제공하는 적절한 배경이 된다. 연회장의 진술은 신랑과 예수를 일치시킨다. 혼인잔치의 주인공이 포도주의 출처와 관련되기에 예수의 흔적은 조용히 사라지며(페이드 아웃) 신랑이 등장한다(페이드 인). 이로써 예수의 포도주 공급의 행위는 신랑의 행위가 되며,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신랑과 예수의 이미지가 겹치게 된다. 이러한 이해는 세례 요한의 진술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요 3:29)

가나의 혼인잔치는 예수의 활동 무대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포도주의 출현을 알리는 배경이 된다. 새 포도주의 출현은 유대교의 정결례를 위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이다. 혼인잔치에서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라는 말은 참으로 황무한 것으로 정결례로 표현되는 유대교의 생동감을 잃은 상태를 드러내고, '여섯' 항아리의 여섯은 불완전함을 상징한다. 대조적으로 "지금까지 좋은 술을 두었도다"라는 잔치장의 선언은 메시아의 때가 도래했음을 선포한다. 항아리 여섯은 일곱째 항아리를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열리는 항아리이다.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려내렸다.

포도주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의 십자가 상에서 다시금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첫 표적은 다른 여타 표적과는 달리 표적에 대한 반응이나 표적이 지시하는 구체적인 내용(가르침)이 나타나지 않고 단지 추상적으로 여겨지는 '영광'만이 드러난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2:11). 이 '표적'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2:18)라는 유대인들의 질문과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에서 암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곧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킨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22). 그렇다면 이 첫 표적의 성격은 연회장의 진술 속에 내포되어 있듯이 거듭남을 상징하는 부활에 대한 예고와 선취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때'라는 말 속에 담겨있다. '때'라는 표현은 영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나란히 등장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 이어서 예수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그의 '영광'은 십자가에서의 들리움으로 그 절정에 이른다. 때와 영광의 문제는 포도주와의 연관성에서 요한 19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위탁한 후,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하시고 돌아가셨다. 첫 표적에서 언급한 그의 '때'가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의 '때'의 성취를 드러내며, "그 영"(보혜사)의 건넴에 대한 전주곡이 된다. 이는 최후의 만찬에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막 14:25)는 말씀의 성취이다. "포도주는 생동감과 기쁨을 상징하며, 인간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는 복음을 상징한다. 우리의 삶은 예수의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되었다. 물로써는 잔치를 벌일 수 없다.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잔치는 포도주를 필요로 한다." (다음 호에서 계속)

김형동 교수/부산장신대·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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