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0주년을 앞두고 극복해야 할 점들
작성 : 2019년 06월 28일(금) 00:00 가+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흔히 신채호 선생의 말로 알려진 이 구절은 그 출처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널리 그리고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그만큼 이 구절이 많은 사람들에게 타당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성은 공감하면서도 정작 갈등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한 해 앞 둔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라는 당위적 주장에서 한걸음 나아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시대적 질문 앞에 서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말 그대로 격변의 시기를 지내왔다. 일제 강점기로 시작해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와 거기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굴곡의 순간들을 지내왔다. 그것은 갈등과 투쟁의 역사였다. 외부의 억압과 내부의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가난과 싸워야 했고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으며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저항해야 했다. 그 격변의 시기에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란 사치였을지 모른다. 그저 오늘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과제였던 시기였고 그 시간들을 견디고 희생해 온 선진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안정화되면서 한국사회는 '기억의 정치'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특별히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유의미한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듯하다. 과거에는 당대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급급했었다면, 이제는 현재 뿐 아니라 과거의 문제를 두고도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단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억하고 해석하며 재현하는 방식을 통하여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특별히 고통스런 과거에 대한 역사 왜곡과 기억투쟁은 한국사회의 중대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기억의 특징은 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공유하는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집단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강화된다는 점이다. 이를 가리켜 '집단기억' 혹은 '집합기억'이라고 부른다. 집합기억은 집단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 집단이 공통으로 기억하는 것이 곧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국가의 경우, 민족의 정체성(national identity)은 민족적 집합 기억, 소위 '국가 기억'을 공유하고 기념하면서 형성이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라는 민족적 기억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리'와 '그들'과의 구분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또한 어떤 기억은 선택하고 어떤 기억은 배제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자긍심과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선택된 영광과 트라우마'(chosen glories and traumas)들에 의해 국가의식 및 민족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온 것이다.

한국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한국전쟁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는 여러 기억들이 혼재되어 있다. 한국전쟁은 종종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으로 불리곤 한다. 한국인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1950년 6월 25일을 '잊혀진 전쟁'으로 부르는 이유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당시 열강들의 관점에서 서술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반면,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도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은 상이하다. 여기에는 세밀하게 고려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냉전과 분단'을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구체적으로는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혐오의 문제들은 근원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한국 근현대사 속 격변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특별히 한국전쟁과 69년 분단의 경험은 소위 '레드 콤플렉스'와 같은 집합적 트라우마의 형태로 남아 사회에 영향을 주고 세대를 거쳐 전이되고 있다.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현재 한국사회의 남남갈등과 세대 간의 갈등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한국사회의 '분단 트라우마'를 꼽고 있다. 과거의 문제를 기억과 트라우마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오늘날 극단적 경향의 혐오와 배제의 사회적 현상들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통찰을 제공해 준다. 전쟁과 극심한 가난을 경험했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분단 체제가 가져온 이분법적 사고방식, 민족의 생존과 번영이라는 구호 아래 행해진 폭력의 일상화, 그로 인한 경쟁과 생존의 두려움 등은 마치 어지럽게 설키고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서로를 옭아매고 있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필자는 교회가 '기억의 행위'를 통하여 사회 통합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먼저, 바르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진실을 추구하고 드러내며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다르게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과거 기독교가 민족과 나라사랑을 위하여 공헌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신앙과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오늘의 맥락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민족과 이념이 배제와 혐오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포용와 인정의 가치를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 공동체만이라도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타자에 대한 환대의 연습을 보여주는 모델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 실천은 이미 우리 주변의 이웃, 탈북자, 다문화, 난민 등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이러한 실천의 방식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배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치유의 기억이 필요하다.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 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집단 및 세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남과 북, 남남의 갈등 속에서 사회적 통합과 상생, 그리고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려면 새로운 인식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각자의 소견대로) 의인들을 위해서만 이 땅에 오시지 않았으며 모든 이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바로 그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은 모든 사람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세상 가운데 임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가 먼저, 지금 여기서, 실천해보자.

김상덕 박사/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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