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섬김'으로 복음 전하는 교회
[ 우리교회 ]
작성 : 2019년 06월 27일(목) 10:00 가+가-
서울북노회 새말교회

새말교회 전경.

박상호 목사(맨 왼쪽)와 오랜 시간 박 목사와 동행해준 교인들. 맨 오른쪽이 부인 나이영 여사.
굽이 또 굽이, 굴곡이 심한 꼬부랑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교회가 있다.

산촌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서울북노회 새말교회(박상호 목사)는 자연이라는 공간과 더불어 마치 한그루의 묘목이 거목이 되어 가는 것처럼 지난 30여 년을 가장 귀한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품으며 삶의 나이테를 더해가고 있다.



#지역의 필요에 응답하라

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인구가 감소하면서도 가난하고 병든 고령의 노인들은 점점 늘어나는 농촌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복지시설이 증가하고 환경이 윤택해졌다고는 하지만 작은 시골마을은 여전히 사회의 지원과 관심에서 벗어난 방치된 노인들이 많다.

'탁월한 섬김에 도전하는 교회' 답게 박상호 목사와 교인들은 가장 먼저 지역 어르신들의 필요에 응답했다. 교회는 지난 10년 전부터 노인복지재가장기요양기관 '새말교회돌봄센터'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교인 10여 명은 전문 자격증도 취득했다.

"자녀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어르신들은 두려움과 고립감으로 불안해하신다"는 박성호 목사는 "그 분들의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것도 교회의 역할이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은 복음 전함에 있다"고 말했다.

돌봄센터에서 가장 호응이 큰 프로그램은 '목욕'이다. 90여 명의 노인들과 한달에 2~3번 지역 근처의 온천을 방문하는데 입장료를 비롯해 모든 비용은 교회가 부담한다. 해마다 철마다 관광도 빼놓지 않는 이벤트 중 하나다.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수시로 식사를 대접하고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 "서울의 자녀보다 목사님 부부가 더 좋고 편하다"면서 고령의 한 성도는 박 목사 사택 바로 옆에 집을 마련해 함께 지내고 있다.



#교회의 시작은 '사랑방'

새말교회는 1980년대 '복음이 닿지 않고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 짓기' 운동을 펼치던 장로회신학대학교 정기덕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하는 사랑방사역에서 출발했다. 매 주말마다 정 교수의 제자 30~40여 명이 지역을 돌면서 함께 농사를 짓고, 이미용 봉사는 물론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펼쳤다. 정 교수와 연이 닿아 1989년 사역에 동참했던 박 목사 부부는 "낮에 부모님이 일하러 간 사이 혼자 남은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찬양을 함께 불렀다"면서 "100여 명의 어린이들과 소풍을 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주말 사역이라는 한계 때문에 평일에는 모든 복음 사역이 멈출 수밖에 없었고 지역주민들이 '상주하는 목회자'를 원하면서 박 목사 부부는 1990년 새말교회에 부임해 첫 사역을 시작했다. 덕분에 박 목사는 장신대 신대원까지 오토바이로 왕복 6시간을 통학해야 했으며 서너 차례 큰 사고를 겪으면서 몸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목사는 "교회 성장보다는 어려운 이웃, 복음이 필요한 이웃들과 함께 하는 것이 교회이고 목회의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

산촌지역으로 농사가 어려운 지역의 특성상 성도들의 생활도 넉넉하지는 못했다. 10여 명의 성도와 함께 교회를 시작한 새말교회는 그마저도 직장 때문에 도시로 떠나면서 교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박 목사는 가난한 교우들의 생계를 위한 방법의 하나로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교우들과 맷돼지나 토끼를 사육하고, 지역의 특산물로 마와 두릅 등을 재배하기도 했다. 지금은 '천연고추장'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교우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먹을 옥수수와 고구마도 심는다. 최근에는 교회 바로 옆에 '새말공동체' 식당을 개업했다. 교회 성도를 위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아직까지는 큰 수익이 없다. 박 목사는 "포천 허브아일랜드 구경하고 한번 들려주세요"라고 깨알홍보를 하며 멋쩍게 웃었다.

교회의 공동작업은 여러 번 실패하기도 했지만 교인들은 박 목사를 믿었다. 지난 30여 년을 함께 한 10여 가정이 지금까지 새말교회의 주축이 되어 박 목사 사역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혹여 살길을 찾아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성도들도 있다. 교회가 지향하는 '함께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에 대한 따뜻함이 그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했다. 다행히 2000년도 초반부터 귀농귀촌인이 늘고 10여 명이었던 성도들도 200여 명까지 성장하면서 교회는 지난 2008년 자립을 선언했고 2013년에는 지금의 새예배당을 건축했다.



#지역이 찾는 교회

새말교회는 사실 교회 재정이 풍족하지 않다. 그러나 마을의 경조사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물론 교회 주변의 신북면 8개 리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교회가 찾아 가기 전에 연락이 먼저 온다"는 박 목사는 "교회가 마을과 하나가 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주일 예배에 흉기를 들고 교회 기물을 파손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큰 부상을 당한 교인도 생겼다. 평일에는 교회 유리창이 깨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교회는 '일방적인 섬김'을 멈추지 않았다. "성령이 이끄시는대로"를 외치면서 박 목사는 교회재정에 연연하지 않고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에 맞게 이웃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한다. 어떤 이유도 조건도 없다. "주고 싶어서"다. '계란 한판'은 새말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지역의 노인들이 '계란후라이'라도 해서 밥 한끼 드셨으며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박 목사는 지역의 8개 리 1000여 명의 주민들에게 계란 한판씩을 매달 전한다. 교회의 아낌없는 섬김과 헌신이 '우리 교회'를 만들고 '우리 목사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교회는 한 가지 소망이 있다. 교우들과 함께 포천노인전문요양병원 설립이다. "노인분들이 요양병원으로 가시면 병원 눈치를 보느랴 찬양하기도 어렵고 소리 높여 기도할 수도 없다"는 박 목사는 "어르신들이 마지막 주님 품으로 가는 순간까지 예배하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그 역할을 "교회가 하고 싶다"고 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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