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디자인하라!
작성 : 2019년 06월 18일(화) 10:00 가+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한 13, 34a)"

요한복음 13장에서 17장까지는 예수의 물러섬, 부재와 초대의 의미를 담은 '이별 담론 (farewell discourse)'으로 승천 신학의 중요한 틀을 제공하는 텍스트이다. 예수의 길은 부활이 그 끝이 아니라 승천으로 완성된다. 부재의 텅 빈 공간을 만드는 일, 그 공간으로 제자들을 초대하고, 그 공간에서 자유롭고, 새롭게 일어나는 기억과 해석, 성찰과 실천으로 당신이 시작한 일들이 사람들에게 계승될 때 예수의 지상 과제는 일단락된다. 그리고 이별 담론의 중심에 '서로 사랑이라는 새 계명'이 놓여 있다. 빈 공간으로 모여온 제자들은 예수를 기억하며 해석하기 시작하는데, 그 핵심이 지금 여기의 갈등과 증오, 혐오를 넘어서는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제자공동체가 속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서로 사랑'의 의미를 충실하게 찾아내어 이를 실천하는 주체들로 초대받았음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뒤이어 오르게 된 무대에서 우리들의 손에 마치 잘 짜인 연극의 대본처럼 모든 것이 명료하게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변적인 세상은 제자들에게 모호하며 당혹스런 질문으로 '서로 사랑'의 의미를 물어온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제자들의 응답은 지금껏 무척 실망스럽거나 때로는 아주 추하고 악한 모습으로 연출되곤 했다. "그리스도교는 폭력이다!" "지상에서 가장 사랑없는 종교는 그리스도교이다!"라고 사람들은 교회를 비난하며 떠나고 있다. '서로 사랑'이 아닌 배타와 차별, 혐오의 종교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한국 교회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한기총의 전광훈 목사를 포함하여 보수 기독 교단의 목사들은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대본 위에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언어폭력들을 쏟아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향한 폭언,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향한 종북 망언,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적 죽음을 선동하는 언어들, 여성혐오 등 실로 입에 담기도 어려운 언어폭력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쏟아져 나왔다. 또한 여혐, 남혐, 난민 혐오, 소수자 혐오 등 혐오 문화가 무섭게 확산되는 시대에 교회가 이런 혐오를 조장하는 일에 기여함은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들은 과거엔 종북혐오로, 요즈음은 성소수자혐오를 조직적으로 확산시켜 교회와 사회를 분열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무엇이 그토록 이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인가?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런 엉터리 사랑의 실천을 하도록 만들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을 디자인하라! 디자인, 이 단어를 나는 '건설하다' '연출하다' '새롭게 꾸미다' 등의 뜻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뭔가를 디자인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우상을 깨뜨리는 일이다. 여기서 우상(idol)이란 항상 그러한 모습으로 정해진 것이 있다는 생각,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특정 체제나 시스템, 교리 등을 성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요즈음 사회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결혼이나 정치 체제 이슈를 예로 든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결혼'이란 어떠어떠한 불변의 개념으로 자연(이성)에 새겨져 있다는 믿음을 가진 자들은 변하는 사회 안에서 요구되는 새롭고 다양한 결혼 시스템을 결코 디자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어떤 시스템을 탈역사화시켜 무조건 재현하는 일이 진리의 수호자라고 목청을 높일 것이다. 창조질서가 그렇다느니, 자연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느니, 성서 텍스트가 그리 말하고 있다느니 하며.

창조질서나 자연법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 무엇보다 성서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배제하며 차별하는 해석행위를 반대한다. 그리고 교회가 마치 이런 사회적 갈등에 대한 정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란 오만 또한 경계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지만 충실하고 평화로운 일이다. 바로 예수가 우리를 위해 마련한 사랑의 공간으로 평화와 정의로부터 소외되는 이들을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그들의 시선으로 '서로 사랑'의 길을 묻고 찾는 일! 함께 디자인하는 일이다. 비록 사랑의 과제가 난해하며, 낯설며, 모호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눈을 가리는 우상을 깬다면, 연구하고 대화하며 예수 가르침의 빛을 조명하여 성찰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랑의 진보'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예수가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함께 디자인하며!

이은주 목사/한국여신학자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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