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몇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 아냐
[ 현장칼럼 ]
작성 : 2019년 06월 17일(월) 00:00 가+가-
브리지임팩트 성교육상담센터장으로서, 또 기독교중독연구소에서 교육위원으로 있으면서 각종 중독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많이 상담했다. 그러면서 중독이 결코 몇몇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여기서 중독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중독이란 무엇일까? 중독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될 용어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이번엔 그 중에서도 두 가지만 소개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가 도파민, 두 번째가 보상 결핍 증후군이다. 도파민은 '활력과 행복, 만족감의 신경 전달 물질'이고, 보상 결핍 증후군은 '보상 회로에 작용을 하는 도파민의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증상'이다. 각종 중독은 도파민이 부족할 때 생기는 보상 결핍 증후군에 속하는 증상들이라고 보면 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성취해서 만족감을 느끼거나 행복하고 재미를 느꼈을 때 보상회로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부족해지면(보상 결핍 증후군에 걸리면) 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각종 중독에 빠져있는 청소년들의 현재 비율이 예전 비율과 비교도 안될 만큼 높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예전에는 우리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기가 어려워졌다. 세상은 이렇게 자꾸 복잡해지고 불확실한데 그 속에서 경쟁은 더 심해지다 보니 1등이 아니면 제대로 된 보상, 칭찬을 받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더 안타까운 건 학교, 직장에서 이런 만족을 얻지 못했다면 집에서라도 행복을 누려야 하는데 요즘 깨진 가정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시대 속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파민의 부족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중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그래서 나는 중독을 단순히 도파민 호르몬의 부족으로 인한 의학적 질병으로만, 또는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인한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고 싶지 않다. 중독은 결국 '사랑의 부족'으로 인해 생긴 병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뒷받침해주는 실험이 하나가 있다. 캐나다의 심리학 교수인 브루스 알렉산더 박사가 한 실험이다. 20세기 초반, 중독에 대해서 연구할 때 학자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연구를 했었다. 우리에 쥐 한 마리를 넣고 물병 두 개를 넣어준다. 한 병은 그냥 물이고 다른 병은 마약이 든 물이었다. 쥐들은 거의 대부분 마약이 들어있는 물을 선택했고 빠른 속도로 죽어나갔다. 그런데 1970년대에 알렉산더 교수가 이런 연구의 결과들을 살펴보다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지금껏 마약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좀 다르게 실험해보자!" 교수는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실험을 하게 된다.

전에는 우리에 쥐 한 마리를 넣었는데 이번에는 우리에 쥐 여러 마리를 넣었다. 그리고 충분한 양의 치즈와 가지고 놀 수 있는 공들을 넣어주고 각종 터널도 만들었다. 쥐들이 마음껏 놀며 짝짓기도 할 수 있는 '쥐 공원'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전과 똑같이 물 병 두 개를 가져다 놓았다.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쥐 공원에서는 쥐들이 마약이 든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복용하거나 남용하는 쥐는 한 마리도 없었다. 혼자 있을 때는 거의 대부분의 쥐들이 약에 중독됐는데 다른 쥐들과 함께 살 때는 단 한 마리도 중독되지 않은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 중 20%가 헤로인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이 사실을 알고 크게 걱정했다. 전쟁이 끝나면 수십만의 약물 중독자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텐데 그럼 분명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나중에 약물에 중독된 군인들의 뒤를 밟아보니 95%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약물을 끊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재활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도, 금단 증상도 없이 이들은 약물을 끊었다. 베트남에서 외롭게 지내던 군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가족, 친구들을 만나자 자연스럽게 중독 증상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앞의 쥐 공원 실험 결과와 같은 결과였다.

이것을 바라본 네덜란드의 피터 코헨 교수는 그래서 중독을 '교류'라고 불러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인데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다른 것에서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근거로 중독이란 관계의 부재, 사랑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청소년, 청년들을 대상으로 야동 끊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게 있다.

'아, 우리 친구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을 원하는 거구나.'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사역자, 부모님,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부탁드리고 싶다. 우리 친구들의 손을 꼭 잡아주시길. 그리고 그 마음과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시길.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무조건 야단치고 강압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가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고, 설령 아이가 걷다가 넘어진다 할지라도 다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 주고 다시 묵묵히 '동행'해 주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마치 느리더라도 꾸준히, 하지만 결코 뒷걸음질 치지 않는 달팽이와도 같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이고 진정한 회복의 길이라고 믿는다.

정혜민 목사/브리지임팩트 성교육상담 센터장·기독교중독연구소 청소년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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