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도시에서 역사를 기억하다
작성 : 2019년 06월 11일(화) 00:00 가+가-

슈트트가르트 북부역의 모습.

필자가 사는 도시는 슈투트가르트이다. 슈투트가르트는 인구 60만 명으로 독일에서 6번째로 큰 도시이다. 벤츠와 포르쉐의 본고장이어서 자동차 관련 산업이 주를 이루고, 보쉬 본사 가 있어서 한인 주재원들과 출장객들이 많다. 하지만 필자에게 슈투트가르트는 성경의 도시이다. 신학교 때에 구약원전을 접하며 그 이름을 인상 깊게 대면했다.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 1812년 세워진 독일성서공회가 슈투트가르트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성서공회가 발간하는 모든 성경 안쪽 면에는 Printed in Germany와 함께 슈투트가르트(Stuttgart) 이름이 등장한다.

한편 찬송가에도 이 도시이름이 언급된다. 독일찬송가 뒷부분에 중요한 교회의 선언문이 등장하는데, 고백교회의 바르멘신학선언과 함께 슈투트가르트죄책선언(Die Stuttgarter Schulderklarung)이 나온다. 이 선언문은 1945년 10월, 독일개신교회의 대표들이 모여 전후 회복을 논하는 자리에 세계교회협의회 대표단이 방문하면서, 세계교회와 연대하는 징표로 자신들이 나치 하에서 온전히 저항하지 못하였음을 반성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처럼 독일교회는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직시하며 공개적인 글로 남기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찬송가에 담았다. 비단 교회만이 아니다. 독일은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으로서 자신들의 모습을 철저히 기억하고 있다.

독일 도시들을 걷다 보면, 길바닥에 쉽게 작은 동판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자리에 살았던 유대인의 이름과 나치에 의해 추방된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서점에서도 종종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박해에 대한 도서들을 특별전시하는 경우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한국에서 목사님들과 손님들이 방문하면 꼭 안내하는 장소가 있다. 슈투트가르트 북부역 (Nord Bahnhof)으로, 나치 하에서 9번에 걸쳐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포로수용소로 이송된 장소이다. '기억의 표징'(Zeichen der Erinnerung)이라 이름 붙인 이곳은 당시 철도와 함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된 2500명의 이름들 이 한쪽 벽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철저히 기억하고 다시는 과거의 범죄를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독일 사람들의 의지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일사회에선 가해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피해자로서 자신들의 모습을 언급하기를 꺼려 한다. 실제로 전후 무장해제되는 과정에서 베를린에서만 소련 군인들에 의해 10만명의 여인들이 성폭력을 당했다. 독일 전역에서는 200만명 이상이 강간을 당했으며, 강간으로 인한 사망자는 24만명이나 된다. 불편한 진실이고, 오랜 침묵 속에 최근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다. 슈투트가르트 남쪽에는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비르켄코프(Birkenkopf) 언덕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슈투트가르트에는 연합군에 의해 53회에 걸쳐 150만톤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5천명이 죽었고, 도심의 90%는 파괴되었다. 전후에 그 잔해들을 언덕에 쌓아 올렸다. 언덕 은 40미터나 높아졌다. 안내문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살아있는 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2003년에 슈투트가르트교회협의회는 이곳에 십자가를 세웠다.

1년에 한 차례 독일교회들은 이곳에서 기도회를 갖는다. 지난 가을 제직일일소풍으로 이 언덕과 북부역 두 곳을 방문했다. 슈투트가르트에 살면서 우리가 기억하고 배워야할 독일과 독일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종종 설교에서도 이러한 독일사회의 반성과 기억들을 언급하면서 우리 역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에서도 출애굽을 경험한 이들이 요단강을 건너면서 12돌기둥을 세웠듯이, 우리도 신앙의 흔적들을 남기고, 후대에 교훈을 남겨야 한다. 좋은 기억만이 아니라 아픈 기억도, 자랑스러운 기억만이 아니라 부끄러운 기억도 남겨야 한다. 독일한인사회도 2세,3세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바른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 성경의 도시 슈투트가르트에 서 목회하는 필자에게 더욱 중요한 사명이다

김태준 목사/독일남부지방한인교회담임목사,총회파송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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